지난 회에서 감상한 레오나르도 (Leonardo Da Vinci, 1452-1519) 의 ‘최후의 만찬’ 은 밀라노의 한 성당 (Santa Maria Delle Grazier) 에 부속된 수도사들의 식당 벽에 그려진 그림인데 처음부터 사연이 많았다. 성당 신부가 이 그림을 빨리 완성하라고 재촉을 자주 해서 레오나르도의 비위를 건드렸다. 마침 유다의 모델을 찾고 있다가 그 신부를 모델로 해서 유다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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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벌써 그림 일부의 페인트가 벗겨지려는 조짐이 있었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가 예의 프레스코 방식을 쓰지 않고 새로 나온 세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프레스코 (fresco) 방식은, 벽화를 그릴 때 벽에 회를 먼저 바르고 회가 마르기 전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다. 젖었다 (fresh) 고 해서 프레스코라고 한다.  페인트가 젖은 회에 스며들어 회와 한 몸이 되기 때문에 회가 벽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오래 간다. 화가가 하루에 그릴 수 있을 만큼의 면적에만 제자들이 먼저 회를 바른다. 그래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제 그린 부분과 오늘 그린 부분을 분별할 수 있고 그래서 그리는데 며칠이 걸렸는지 알 수가 있다.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하고 색을 뜻 대로 쓸 수 없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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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세코 (secco) 방식은 그 당시 새로 나온 오일 페인트를 마른 회벽에 바르는 것이다. 말랐다 (dry) 고 해서 세코라고 한다. 언제나 새 것에 흥미가 많은 레오나르도가 프레스코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코 방식을 택하였다. 그러나 세코 방식으로 그린 페인트가 쉽게 베껴질 줄을 미처 알지를 못했다. 마치 화장실의 페인트가 습기 때문에 벽에서 벗겨지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림이 완성된 후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베껴진 곳을 새 페인트로 메꾸었던 것이다. 나이가 150세 정도 되었을 때 벽을 뚫어 문을 만드느라고 그림의 일부를 무자비하게 도려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또 고난을 받으셨나니 테이블 아래로 뻗은 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다 (제1도). 이차 대전 때 나치 군인들은 총 연습의 목표로 이용했다. 비행기 폭격에 건물이 두 동강이가 되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 벽만은 무사했다.

   대대적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동안 낀 때는 물론 개칠을 모두 베껴버렸다.우표만한 곳을 베끼는데 하루 온 종일 걸릴 때도 많았다. 20년이 걸렸다. 1999년에 개관을 했는데 미리 예약한 사람들을 한번에 20여명씩만 받고 관람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제2도는 틴토렛토(Tintoretto, 1518-94) 의 그림이다. 레오나르도의 대칭적이고 정적인 구도와는 너무 다르다. 천사들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이다. 테이블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보인다. 원근법이 좀 심해서 앞 사람과 뒷 사람의 크기가 심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입체감이 더 난다. 천정에 걸려 있는 등과 예수님의 후광이 어두운 방을 비추고 있다. 모든 제자들의 머리 위에 후광이 있는데, 예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유다 만은 후광이 없다. 음식 날라오는 남자와 빈 접시 가지고 나가려는  여인이 화면 중심에 크게 그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모르는 무식한 인간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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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틴토렛토는 르네상스 마지막에 베니스에서 활약한 화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물감 들이는 사람이었는데 아들이 그림에 재주가 있는 것을 알고 거장 티션 (Titian) 의 스튜디오에 보냈다. 티션은 틴토렛토가 훌륭한 화가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졌지만 그의 그림이 너무 자유분방해서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열흘만에 돌려 보냈다. 그러나 틴토렛토는 ‘채색은 티션, 구성은 미켈란젤로’ 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평생 티션을 존경했다.

   그당시 어느 화가가 “내가 3년 걸려 그릴 것을 틴토렛토는 3일만에 그린다” 라고 말했듯이 누구도 그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더구나 스튜디오를 엄청나게 크게 짓고 도제를 많이 써서 큰 그림들을 신속하게 대량 생산했다. 그리고 돈도 남들에 비해 덜 받았다. 양이 많았으니 질이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동료 화가들한테서 비난을 받았다. 어느면에서 요즈음의 중국 제품이랄까. 그러나 그의 걸작들은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이어받은 바로크 (Baroque)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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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도와 제4도는 바로크의 루벤스 (Paul Rubens) 와 표현주의의 놀디 (Emil Nolde) 의 만찬이다. 각자 해석해 보시기 바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