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호 (Vincent van Gogh, 1853-1890) 는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고 하였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를 사랑하고 도와 주어야한다는 일념으로 농장과 광산으로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너무나 성서를 글대로 해석해서 “네 옷을 벗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를 읽고는 벗어 줄 옷이 없을 때까지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교단의 눈에 어긋나고 교인들도 겁을 먹게 되었다. 결국 27세에 전도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끊을 수 없어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제1도는 ‘감자 먹는 사람들’ (Potato Eaters) 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 가족이 고달픈 하루 일을 끝내고 감자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정직하고 꾸준하게 땀으로 만든 감자이다. 그들의 표정에는 먹을 때의 즐거움이란 찾아 볼 수도 없고 그들의 손은 힘든 일 하느라고 모두 일그러져 있다. 소 외양간 같은 작고 어두운 방에 석유등 하나가 이들을 축복해주고 한 가닥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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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호의 밑이 없는 열정은 화폭으로 옮겨졌다. 화가 생활 10년 동안에 화산이 폭팔하듯 1,700 점의 그림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그의 그림이 시장에 나오면 수천만 불에 팔리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아무도 사려고 들지 않았다. (한점이 팔렸을 뿐이다.) 언젠가 집을 떠나면서 동네 목수집에 그림들을 맡겼는데 목수는 그림들을 모두 헐값에 팔고 안 팔린 작품은 모두 태워 버렸다. 알르 (Arles) 에 있을 때 자기를 잘 돌봐 준 의사가 있었다. 고마워서 초상화를 그려 주었는데 (Portrait of Dr Felix Rey) 그의 어머니가 그 그림을 닭장 문으로 썼다. 고호는 “사람들은 화가들이 죽고 나서야 그들의 그림을 비싼 돈을 주고 산다. 그래서 살아있는 화가들은 죽은 화가들의 그림 때문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라면서 실소했다. 

    돈이 없어 월세가 밀렸다. 주인이 독촉 하자, “제가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 집에서 유명한 화가가 살았다고 하지 않겠어요?” 주인 왈, “오늘 다 안 갚으면 내일 사람들이 와서 그런 이야기 하겠지.” (농담이다.)

    헤레라 (Carmen Herrera, 1915-) 라는 할머니 화가가 뉴욕에 살고 있다. 10년 전에 처음으로 그림 한 점을 팔았다. 그러니까 그림 그려 온지 60년이 지나고 나서이다. ‘흰색과 초록색’ (Blanco y Verde) (제2도) 이라는 미니멀리즘 (Minimalism) 작품이다. 누드 여인 같기도 한 이런 그림이 3만 불에 팔렸다. 고호가 알았다면 동정도 많이 했겠지만 정말 통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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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파리로 진출했다.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두웠던 그의 그림은 밝아졌다. 색과 붓 놀림이 한 몸이 되었다. 2년 동안에 200점을 그리고는 로트렉의 추천으로 파리를 떠나 파란 하늘, 눈부신  햇빛으로 이름난 알르 (Arles) 로 이사했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으로 노랗게 물든 들판을 그렸다. 한 밤 중에도 밖에 나가 개스 등을 켜고 그림을 그렸다. 맑은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화판에 옮겼다. 

    제3도는 ‘씨뿌리는 농부’ (the Sower) 이다. 태양은 노란 페인트가 무더기로 찍어 발라져 있어서 더 이글거리고 있다. 하늘도, 밀밭도 금빛으로 물들여 있다. 밀이 짤려진 밭은 온통 보라색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다. 자신이 존경하던 밀레 (Millet) 의 씨 뿌리는 농부와 같은 자세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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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호는 화가들과 모여 살면서 같이 그림 그리기를 원했다. 우선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을 초대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고갱과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하는 고호의 동거 생활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고갱이 헤어지려는 것을 알고는 실망이 대단했다. 정신이 나갔다. 고갱한테 겨누었던 식칼로 자신의 귀를 짤랐다. 찔린 귀를 신문에 싸가지고 자주 드나들던 청루에 가서 단골 창녀에게 던저 주었다. 다음날 경찰이 왔을 때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상 레미 (Saint-Remy) 에 있는 정신 병원에서 일년을 지내고 파리 근처에 있는 오베르 (Auvers) 로 갔다. 가셰 (Gachet) 의사의 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제4도는 ‘가셰 의사’ (Portrait of Dr. Gachet) 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안 좋았던지 동생한테 쓴 편지에 “믿을 만한 의사같지 않다. 나보다도 더 심한 환자 같거던. 장님이 장님을 데리고 간다면 둘 다 도랑에 빠지지 않겠어?” 라고 썼다. 그러나 두 장님은 곧 친구가 되었다. “이 그림은 한 개인의 비탄에 빠진 얼굴이 아니고 현 사회의 모습이다” 라고 고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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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은 고호가 죽은 후 그 누이가 300 프랑에 팔았다. 14명의 손을 거쳐 1990년에 뉴욕에서 8천3백만 불에 일본의 재벌에게 넘어 갔다. 자기가 죽으면 이 그림을 같이 묻어 달라고 했다는데, 재벌이 1996년에 죽고 나서 정말 그림의 행방이 묘연했다. 유언대로 땅 밑에 묻혀 썩었다고들 개탄을 했다. 2007년에야 진상이 나타났는데, 다행이도 그 억측을 뒤엎고, 땅 위에서 두 손을 거쳤다고 한다. 임자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재하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