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살로메 (Salome) 라는 여인이 있었다. 신약 성서에 의하면 (마가 6:17-29), 헤로데 왕이 동생의 부인이었던 헤로디아스를 취해서 아내로 삼았다. 세례자 요한이 옳지 않다고 비난해서 헤로디아스의 미움을 샀다. 헤로데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스의 딸 살로메가 춤을 잘 추었더니 헤로데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주겠다고 했다. 살로메는 어머니의 뜻대로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했다. 옥에 갇혀 있던 요한은 머리가 잘려졌고 머리는 쟁반에 놓여 살로메 손으로 넘어갔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살로메는 많은 화가들의 주제가 되어 왔다. 특히 자신의 환상과 미지의 신비로움을 화폭에 옮기려는 모로 (Gustave Moreau, 1826-98) 에게는 더 없이 좋은 주제였다. 마음 전체를 지배한다는 느낌을 강조한 고갱의 영향을 많이 받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프랑스 화가로서 상징주의 (Symbolism) 의 선구자가 되었다. 

     제1도는 700번 이상 스켓치를 한 후에 그린 ‘유령’ (Apparition) 이라는 작품이다. 살로메가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유령으로 나타난 요한의 머리를 쳐다본다. 헤로데한테 머리를 달라고 하기 전에 환각을 보는 장면이라고도 하고, 잘린 머리를 받고 나서 감사의 뜻으로 한번 더 춤을 추려고 할 때 머리가 나타난 장면이라고도 한다. 머리에서 나온 빛이 어두운 방을, 특히 살로메를 비춘다. 그 머리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다. 뒤에서는 헤로데와 헤로디아스가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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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을 보고 와일드 (Oscar Wild) 가 연극 각본을 썼다. 살로메를 완전히 펨 파탈 (femme fatale) 로 만들었다. 직역을 하면 ‘치명적 여인’ 이다. 요염한 매력과 강렬한 유혹으로 남자를 휘어 잡아 비운으로 몰아가는 요부를 일컫는다. 살로메가 요한한테 반해서 키스해달라고 한다. 거절 당하자 그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헤로데의 생일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맞추어, 일곱 베일을 하나씩 벗어가며 선정적 춤을 추어 헤로데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헤로데는 살로메의 원대로 요한의 목을 치게한다. 살로메는 그 머리를 잡고 입에다가 바라고 바라던 키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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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각본에 영국 출신 비어즐리 (Aubrey Beardsley, 1872-1898) 가 삽화를 그렸다. 제2도는 마지막 삽화 ‘클라이막스’ (The Climax) 이다. 살로메가 죽은 요한의 입에 키스를 하면서 “나는 네 입술에 키스를 했다” 라고 말하는데, 요한의 목에서 떨어진 피 위로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이 피어 오르고 있다. 

     제3도는 체코 태생 무카 (Alphonse Mucha, 1860-1939) 의 ‘살로메’ 이다. 비어즐리의 그림이 흑백인데 비해서, 무카의 살로메는 매우 화려하다. 무카는 상징주의 (Symbolism) 의 주제를 채택하였지만 신비롭고 으시시한 형상 대신에, 펨 파탈 대신에,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렸다. 제4도 ‘사계’ (Four Seasons) 에서와 같이 속이 비치는 옷을 걸치고 꽃 밭에 앉아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있는 여인들이 대신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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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여 배우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를 한장 그린 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동안 그녀의 전속 포스터 화가가 되었고, 각 처에서 주문이 계속 쇄도하였다. 말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 돈과 우표도 디자인 했으며 슬라브 족의 역사를 일련의 대형 화폭에 옮겼다. 불행하게도 독일 나치한테 체포되어 감옥살이도 하다가 병들어 죽었다.

     무카가 즐겁게 꼬리치는 여인들을 가볍게 그린데 반해서, 오스트리아의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는 선정적인 여인을 짙게 그렸다. “이것이 춘화도가 아니냐?” 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모든 미술은 에로틱한 것이다” 라고 답변했다 (제19회). 사실 그의 많은 스켓치는 너무 에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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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주의의 이미지와 인상파의 부드러움을 융합해서 그의 특수한 장식적 (decorative)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금박을 많이 쓴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그의 ‘키스’ (The Kiss) 는 너무나 유명하다. 아름답고, 귀족적이고, 부유한 여인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제5도는 그런 초상화 중 하나이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설탕으로 갑부가 된 유태인의 부인이다. 비엔나 살롱의 사교계 명사로서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였다. 약간 벌린 빨간 입술, 신비로운 눈, 깍지 잡은 손, 모두가 성적 감흥을 일으킨다. 3년을 그렸으니 클림트와는 연인 사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그림은 2006년에 1억4천만 불에 팔려 기록을 깨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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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즐리, 무카, 클림트의 화풍을 아트 누보 (Art Nouveau) 라고 한다.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이다. 미술 뿐만 아니라 건축, 가구, 보석, 등 많은 분야에 일어난 바람이다. 이 바람은 전 세계로 퍼져 오스트리아에서는 세세션 (Secession), 독일에서는 유건트슈틸 (Jugendstil), 이태리에서는 스틸레 리베르티 (Stile Liberty), 러시아에서는 모데른 (Modern) 이라고 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