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카톡이나 e-mail로 소식을 주고 받는 요즈음 세상인데 친구가 보내 온 친필 편지가 너무 반가웠으며. 그 편지에 적힌 사연은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다..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좋은 신랑감을 만나 同期(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하였다. 시어머님과 함께 특별 찬송을 할 정도로 믿음 좋고 화목한 가정 생활을 하는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유복한 삶의 주인공이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사는 동안에는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하고 싶었던 노래 공부도 계속하는 그녀의 처지를 모두 부러워하였다.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친지들 거이다가 그의 집에서 묵고 갈 정도로 그녀는 살림도 인심도 넉넉한 가정의 행복한 주부였다. 가끔 동창들의 모임에 가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 그녀의 집에 들렀던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고 母校(모교)를 위한 후원금에도 인색하지 않았던 그녀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뿐 아니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후배들을 은밀히 돕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와 우리 친구들은 그녀의 숨겨진 善行(선행)과 德性(덕성)을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이 누리는 행복을 시기하고 방해하는 타락한 천사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불의의 교통 사고로 막내 아들을 잃은 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남편의 發病(발병), 그리고 수년에 걸친 투병 끝에 결국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녀의 나이 60이 채 안되어서였다
사람이 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 가족간의 불화를 남기도 돈을 남기지 못하고 떠나면 슬픔만 남긴다고 하던가? 그녀의 남편이 남기고 간 사업을 정리하는 동안 그녀가 겪은 갖가지 가정 불화를 곁에서 지켜볼 수박에 없었던 우리 친구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럭 저럭 시간이 지나 그녀의 남은 아들이 학업을 마치고 대강 정리를 해서 아들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그녀가 이사를 간 후에도 비교적 가까운 친구였던 나와는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낸 셈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최상의 행복에서 졸지에 낭떠러지로 떨어진듯한 그녀의 불행한 심정을, 자식과 남편을 잃은 슬픔을, 새로운 곳에서의 불안한 생활을, 큰 아들 내외와의 불편한 관계 등을 호소해 왔으나 친구인 나는 그녀를 위하여서 “기도”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다가 언제부터인가 점점 소식이 뜸해지고 근래에는 전연 연락이 끊겨. 내심 궁극해 하고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참으로 오래간만에 편지가 온 것이다.
염려와 달리 그녀의 긴 편지에는 슬픔을 이기고 이제는 잘 살고 있는 그녀의 생활이 평화롭게 서술되어 있었다. 평화로울 뿐 아니라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한 희망찬 비젼과 용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녀는 새로운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그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교회의 장로님 가정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그녀, 시댁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신실한 믿음의 배경을 가진 집안인 것이 그 친구의 자존심이며 자랑이었다. 그러한 그녀가 현재 미국에서 잘 나가는 신흥 교단 소위 말하는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를 나가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진지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은 특별하며 나름대로 그 존재 가치가 있는데 누가 누구를 함부로 비판할 수 있는가? 더구나 신앙 문제에 있어서 어느 종교가 어느 종교를 이단이라고 정죄할 수 있는가? 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확고한 의지로 결정하였다는 그녀의 “改宗(개종)”이야기도 솔직하게 적혀 있었다.
그 새로운 교회에서 그녀가 새롭게 깨닫고 받은 은혜, 그로 하여 사물에 대한 인식 변화나 생활의 변화도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역경을 통해 더욱 강해진 친구의 신앙심도 읽을 수 있었다.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미리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神의 慈悲(자비)를 그대는 아는가? “고통”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 속에 숨겨진 무한한 “축복”을 말하는 친구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 되어 있었다.
“친구들아 두려울 것 없다. / 앞으로 나아가자
 이 여행이 혹 힘들지라도 / 하나님 계시니
근심 걱정 다 버리고 / 힘껏 앞으로 나가자.
너희 가슴 부풀리니 / 모든 것 잘 되리.
모든 것이 어렵지 않도다. / 나아가자 앞으로
팔을 걷고 용기를 내자. / 하나님이 보호하시리.
슬픈 일과 어둠이 지나면 / 참 행복이 오나니
우리 고난 곧 옛말 된다 / 모든 것 잘 되리.”
All is well 즉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는 친구의 편지는 그녀에게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기도문인 것이다.
삶의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낸 친구의 믿음과 긍정적인 靈性(영성)이 수천 마일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전염이 되는가? 친구의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모든 고난이 잘 해결 되리라.”는 희망의 물결이 계속 나의 가슴 속에서도 출렁이고 있음을 느낀다..  (201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