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있는 세개의 밭 중 잡초밭은 내가 본 지상의 밭 중 가장 아름다운 밭입니다. 집을 샀을 때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몇그루의 소나무 때문에 집이 그늘 져서 지붕위의 눈, 마당의 눈이 마을에서 제일 늦게 녹았습니다. 남편의 눈에 거슬리면 다 없애버리는 성품이 발휘되어 이웃 사람들과 함께 소나무 몇 그루를 썩썩 베어 넘어뜨리고 몽당몽당 잘라 몇 년 간 불을 잘 때고 살았습니다. 그때 나무를 베는 것은 맘이 쓰렸지만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고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소나무야 미안해. 나에게 아들과 딸이 있는데 내가 이제 만난 너 보다는 이 아이들이 너 중요해. 이 아이들을 이 집에서 키워야 하니까 너를 잘라야 해. 햇빛이 집에 잘 들게 해야 하거든....정말 미안해."
"아냐 아냐 나도 이 멀대 같은 키가 좀 지루해. 네 아이들 잘 키워."
이후 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멋대로 자라는 풀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시행령을 가족 모두에게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들꽃씨를 한박스 사다가 그 자리에 훌훌 뿌렸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들꽃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있던 제비꽃과 취꽃만 멀뚱멀뚱 잘려나간 소나무 밑둥 주위에서 피어나곤 했습니다. 몇 년 뒤 이 밭에 아주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라즈베리가 덤불덤불져 뻗어 나가더니 검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도 하고 구석 구석에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었다 졌다를 반복합니다. 건너편 마당에 있는 꽃밭의 수선화, 튜울립, 양귀비 등등의 꽃들과 배틀을 하는 듯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삼 년 전부터 잡초라 하기엔 좀 아리송한 풀이 쫑긋 솟더니 마구 자라나는 것이였습니다. 꽁숭어리는 얼마나 또 큰지 주욱 올라와서 고개를 모로 꼬고 꽃밭을 향해 소리 지르는 듯 합니다.
" 야!!! 거기 .....심겨진 것들아아~~ 우리들의 근성이 저희들 보다 나아~~~"
" 아무리 그래봐라 너희들이 우리들의 치마 색깔을 흉내나 낼 수 있나아~~~."
정말 잡초밭의 꽃은 꽃밭의 꽃들이 입은 치마 색깔을 흉내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시저고리 같은 꽃과 빈티지를 입은 듯 자유롭게 핀 것들의 자유로움은 늘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은 나에게 바람이 전한 소식을 속삭여 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저 여자는 풀들과 대화를 하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거나, 저 여자는 풀들하고 대화 할 만큼 소녀적 정서가 남아 도는 조금 덜 떨어진 여자로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의 시골마을에 어쩌다 삶이 스며들어 교감을 나눌 대상이 풀 밖에 없다면 이런 경지에 정말로 오르게 됨을 말씀 드립니다. 어떤 때는 모기하고도 대화를 나누고 어떤 때는 거미하고도 말을 나눕니다. 난 약간 삐루룽 된 채 맑아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알 수 없는 꽃숭어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습니다. 부채모양의 잎과 솔방울 모양의 꽃을 가진 그 풀은 다음 해에는 옆으로 새끼를 쳤습니다. 올 해로 삼년 째 되는데 이 아이들이 이젠 제법 일가를 이룬 것입니다. 난 매일 그 애들의 볼을 톡톡 건드리며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어느날 월마트에 가서 밖에 내 놓은 꽃들을 보는데 거기 이 애들의 종과 같은 애들을 화분에 심어 놓고 파는 것입니다. 작은 것의 가격이 12불이나 되는 것입니다.
'어머 어머 이애들이 왜 여기에 있어. 어머 이 애들이 자유의 전달자로 나선 것인가?' 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채소밭에만 관심이 있어 잡초밭에 뭐가 나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아 관심 없는 채로 놔 뒀어야 했는데 내가 또 촐싹을 떨었습니다.
"정필 아빠, 저기 잡초밭에 이상하고도 신비한 것이 나왔는데 그게 계속 번식을 해서 일가를 이루었어. 그런데 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풀인가봐. 작은거를 12불씩 팔더라구. 이 애들이 많이 퍼지면 좀 팔아 볼까?" 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내가 모르는 사이 바로 마당에 나가 작은 것들 두어개를 삽으로 뿌리를 동강내어 앞 마당에 심어 놓았습니다.
'아 이런 망할~~영감, 고새를 못 참고 이산가족을 만들다니....'
난 남편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든 식물은 원뿌리를 잘못 건드리면 일가족이 몰살된다고. 가만 냅 둬!!! 분가를 시킬 즈음이 되면 그 때 해도 늦지 않아. "
물론 일가족이 몰살되는지 어쩐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섭리를 볼 때 아비나 어미가 잘못되면 새끼들이 힘들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그렇다고 뻥을 친 것입니다. 착한 남편은 그 뒤 그 애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의 이름은 루핀(lupine) 또는 루피너스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층층이 부채꽃이라고 합니다. 푸른루핀, 노랑루핀, 여러해살이 루핀이 있는데 여러해살이 루핀의 색깔은 하늘색,분홍색,남자색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집에 찾아든 것은 여러해살이 남자색 꽃입니다. 난 이 아이들의 정령을 불러 내 대화를 나눕니다.
"네 이름은 lupine인데 왜 그 이름을 갖게 되었어? 내가 컴퓨터에서 찾아봤는데 이름의 유래는 안 나왔어. 대신 꽃말이 모성애래. 그리고 '늑대의' 이란 말도 있었어. 그런 말을 왜 갖게 되었어?"
사람들은 루핀이라고 읽지만 난 루-파인(Lu-Pine) 인것만 같습니다. 소나무와 대화 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소나무는 내게 걱정 말라고 멀대처럼 큰 키가 지루하다고 했었던 것입니다. 꽃숭어리가 솔방울을 닮아 있기도 했으니 이 아이들은 소나무의 정령이 깃든 또 다른 종이고 그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기호인 Lu를 붙여 놓은 것이라고 약간 오버한 해석에 이르렀습니다.   꽃말이 마음에 듭니다. '모성애' , '늑대의' 모든 것을 퍼즐 맞추듯 함께 해석하면 '소나무 정령이 깃든 늑대같은 모성애' 라는 것입니다.



숲에 들면 


숲에 들면 온갖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다
아직 덜 여문 것도 있고
일찍 여문 것도 있다
어설픈 내 눈에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보인다
벌레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제 색이 너무 강열한 것과
대충 대충 색을 여며 놓은 것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내 속내
붉고 꼿꼿한 줄기는
누르스름해 졌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꽃은
 성급하게 진 듯 하다
남은 가시를 스스로 씹어 먹는 새벽
일찍 찾아온 새들의 수다로
숲은 대체로 명랑하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
귀를 담그면
뇌의 이랑 이랑에
물이흐른다
숲을 내려올 즈음에는
 내 안의 열매
자신감 있게
불거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