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준비하는 병영은 바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짧은 여름의 땡볕이 수그러진다 싶으면 밀물처럼 곧바로 닥쳐오는 것이 전방의 겨울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어째서 후방에는 산조차 만산이홍엽으로 흥청대고 있는데 유독 전방에만 이르게, 망설임도 없이 겨울이 몰려와 자리 잡고 앉아버리느냐는 것이다. 해야 될 일은 왜 그리도 많은지, 김장 준비에 무 저장고까지. “1인당 정확하게 1루베짜리 개인호를 판다.”생전 듣도 보도 못한 루베라는 단어가 처음 겨울을 맞는 신병들이나 막노동 아르바이트 한 번 안해 본 축들이야그게 세제곱미터의 일본식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리 만무하면서도 무작정 한 겨울 내내 자기가 먹을 무 구덩이를팠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을 것이다. 그리고 숨을 돌릴 때쯤해서 진짜 겨울이 닥쳤다. 그 긴 야전의 겨울은 낭만과는 애당초 무관한 계절이었다. 오히려 생존의 영역에 준거하는 단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삭막함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임무수행과 혹한극복이라는 중첩된 상황타개의 현장에도 따스한 온기는 있었다. 80년대까지, 혹은 길게는 90년대 말까지 겨울의 병영은 그 녀석으로 인해 그나마 사람 살만한 주거지로 화할 수 있었다. 그 따스한 이름은 바로 ‘뻬치카’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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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뻬치카(Pechka)! 사전적으로 이야기하면 러시아와 만주를 비롯한 극한(極寒)지방에서 쓰는 난방 장치로 돌, 벽돌, 진흙 따위로 만든 벽난로를 일컫는 용어. 어떤 이는 ‘페치카’라고도 부르지만 가장 어울리는 용어는 ‘뻬치카’여야 한다. 근거는 있다. 병영에 ‘뻬당’은 있었어도 ‘페당’이라는 직책과 용어는 결코, 어떤 부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한국 병영의 뻬치카는 러시아와 만주의 그것과는 형태나 난방 방식 자체가 달랐다. 혹, 강변의 경치 좋은 카페 같은 곳의 벽에서 아직 소녀적 취향이 남은 신사 숙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뻬치카’를 상상한다면 “아니 올시다”이다. 그런류의 뻬치카야말로 원시적 극한지방의 뻬치카 형태다. 병영의 뻬치카는 온돌식을 가미한 말 그대로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보통 30명 단위의 소대 막사를 기준으로 1개 정도를 설비하는데 내무반(지금은 생활관으로 부른다) 한켠에 거의 침상의 세로길이 크기만 한 2세제곱미터 정도로 설치되었다. 원시적 뻬치카는 내부에서 직접 불을 지피지만 병영 뻬치카는 내무반 밖에 화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리는 밖에서 지핀 불기가 뻬치카의 불길을 따라 순환하며 뻬치카를 구들처럼 덥히고 거기에서 발산하는 열로 내무반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뻬치카가 자리한 내무실의 바깥이 뻬치카의 화구자리요 뻬당들의 일터였다.
 
   뻬치카 당번이야말로 ‘짬밥’의 경륜을 의미하는 바로미터였다. 물론 최상급 고참은 뻬당직을 수행하지 않는다. 간부들의 눈이 없을라치면 누런색 깔깔이를 걸치고 양지쪽에 앉아 하품이나 해대는 동물원의 늙은 사자처럼 뻬치카 옆자리에서 느긋하게 TV시청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계급이니 분탄검댕을 묻힐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정확하게 말해 뻬당을 졸업한 군번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무튼 뻬당의 반열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내무실의 중고참 이상의 위상을 획득했다고 봐야 하며 약간의 주의력과 토막잠을 감내할 능력만 된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직책이었다. 뻬당들은 모든 내무반원들의 난방을 책임진다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함으로 인해 그 외의 어떤 임무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있었고 심지어 단체 얼차려까지도 열외였다. 당연히 불침번, 교육훈련은 물론 그 어떤 사역에도 동원되지 않는 특권적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긴 겨울 내내 뻬당들의 진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항상 막장에서 금방 나온 채탄부같은 검은 얼굴과 대물림이 되었던 뻬당복의 검게 반질거리는 그 헌신의 상징으로 말미암아서였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생사를 가를 만큼의 신중과 고도의 노하우를 가져야만 임무수행이 가능하기도 했다. 병사들이 직접 손으로 벽돌과 흙, 또는 시멘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뻬치카에 따라 최상의 열효율을 내기 위한 여건은 각각 달랐다. 어떤 내무반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내무반은 죽어라 때도 물에 빠진 놈 콧등처럼 냉랭했던 것이다. 그러나 뻬치카의 부실을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뻬당의 능력 탓이었다.


통상 뻬치카의 연료로는 분탄과 황토 혹은 마사토를 9:1 비율로 배합하여 사용했다.

 

   그 과정 또한 오묘하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분탄창고에 그득 쌓인 분탄을 화구로 가져와 밀가루 반죽처럼 이긴 다음 삽으로 적당히 떠서 뻬치카에 밀어 넣고 일정한 두께로 평탄하게 한 후 구공탄 구멍처럼 구멍을 숭숭 뚫어 놓으면 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부대에 따라서는 분탄 따로 황토 따로 보관했다가 그때그때마다 믹서해서 사용하는 부대도 있고, 반죽한 재료를 틀에 넣고 조개탄처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석탄반죽을 조금씩 올려 석탄 덩어리를 불덩어리로 만든 뒤 다시 석탄반죽을 그 위에 모두 덮고 끝부분에 불구멍을 하나 정도만뚫어 놓으면 불길이 그 구멍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뻬치카 안으로 빨려 들게도 한다. 어떤 상태로 불을 지피던 씨앗불의 강도를 정확하게 가장 적당량을 밀어 넣어야만 불이 꺼지지 않고 한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씨를 꺼뜨리면 화목으로 다시 밑불을 지핀 후 새로 피워야 했기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련의 행위야말로 시간과 물질과 인간이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룰 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예술이었다.

 

   뻬치카의 불 지피는 방법이야말로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그 내무반만의 독특한 전통이었다. 이 도제식 교육의 전수자를 일명 ‘뻬조’라고 불렀다. ‘뻬당보조’의 줄임말을 직책으로 부여받은 고참 일병급 병사는 말 그대로 간택된 차세대 난방총책이었던 것이다. 함에도 뻬당의 많은 특권 중 일부분에 한해 조금씩 간만 보았지 아직 그들은 뻬당과 같은 완전한 열외의 참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야밤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단잠과 맞바꾼 몇 가지 특권을 향유할 수 있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야밤에 일어나는 은밀한 즐거움 중 으뜸은 라면요리의 완성, ‘뽀글이’의 음미였다. 병장이나 하사쯤 되어야 끓여먹던 반합라면을 시간이나 계급과 전혀 무관하게 합법적(?)으로 끓여 먹을 수 있었고 또 윗선에서는 뻬당들의 그 즐거움을 묵인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혹 신임 간부가 일직을 서다가 불법으로 간주하여 무력화시켰다손 치더라도 이내 바로 끓여다 주는 일종의 뇌물인 야밤의 반합라면과 김장김치에는 같은 공범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그 은밀한 즐거움을 같이 즐기지 않는 눈치 없는 뻬당이야말로 괘씸죄를 적용받아야 마땅한 인사가 되곤 했던 것이다.
 
   뻬당의 권한이 마침내 빛나는 광휘가 되어 번득이는 순간이 야밤의 뽀글이였던 것이다. 혹자는 반합 속에 라면 3개를 끓일 수 있다고도 했고 또 어떤 이는 5개까지도 끓인다고도 했다. 아마 라면죽 수준이었을 것이다. 뻬치카에 끓이는 반합라면은 엄청난 전방위 화력에 힘입어 반합을 화구에 투입하기 바쁘게 끓기 시작했고 라면 2개를 끓이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했다. 뿐만 아니다. 반합에 건빵과 부속품인 별사탕까지 넣어 만든 건빵탕은 선험적으로는 건빵이 풀려 풀죽처럼 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쫄깃한 건빵이 온전한 모양을 갖춘 채 달싹하고 고소한 향내를 풍기며 홰를 동하게 했다. 뻬당이 라면이나 건빵을 끓이는 시간과 일치된 불침번도 그날만큼은 결코 지루한 불침번은 아니었다. 기꺼이 야밤의 만찬에 동참할 수 있었으므로….

 

   그러나 진짜 내무반의 불침번은 십자매였다. 내무반마다 뻬치카 옆 새장에서 밤낮으로 병사들을 지키던 이 앙증맞은 십자매는 결코 정서순화를 위한 애완용이 아니었다. 분탄을 때는 뻬치카의 특성상 균열에 따른 가스 유출은 내무반 병사 전원을 위험하게도 만들었다. 그래서 막장 탄부가 십자매를 들고 갱도에 들어가듯 바로 그렇게  목숨을 바쳐 가스를 감지해 내던 가스감지기였던 것이다. 가스에 민감한 십자매의 슬픈 운명으로 말미암아 병사들의 안녕을 담보할 수 있었다. 함에도 병사들은 그러려니 했다. 간혹 여린 마음을 가진 병사가 눈에 띄면 십자매 사료담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뻬치카와 뻬당과 십자매, 그리고 분탄은 이제 없다. 기록상으로는 홍천의 시동에 위치한 모 대대가 1999년까지 뻬치카를 땐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후로는 전설이 되었다. 십자매의 애처로운 눈길을 찬찬히 봐주지 못한 메마름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뻬치카의 따스함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빼치카야말로 삭풍 속에서도 대한민국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한 일등공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군대의 겨울은 바로 뻬치카와 함께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