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동네 사람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마당에 주욱 펴놓고 파는 야드세일을 난 참 좋아해요. 예전에는 야드세일을 다니면 이것 저것 살 것이 많았는데 경기가 안 좋아진 후로는 별로 살 물건이 없어요.  많은 서민들이 팔 만한 물건은 다 팔아버린 때문일거예요.   세번 째로 들린 집에서 예쁘게 수를 놓은 식탁에 놓는 장식보를 유심히 봤지요.   오래되어서 면은 조금 얼룩이 있었어요.   딸아이가 "엄마 더러워" 하였지만 누군가의 오랜 정성이 담긴 장식보를 사기로 했어요.   "얼마예요"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50센트요" 하는 거예요.   누가 만든 것인지를 물었더니 그녀의 어머니가 만든거래요.   그녀의 어머니는 너어싱홈에 계시대요.  죽기 바로 직전에 가는 그 곳에 계신 엄마의 물건을 파는 딸의 표정이 하도 착잡해서 조금 울적해졌어요.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작은 통이 있어 열어보니 뜨게바늘이 종류대로 가득 들어 있는거예요.  그 뜨게바늘을 내려다 보며 한 젊은 여인이 생글거리는 얼굴로 취미생활을 한다고 이것 저것 종류대로 준비해놓고 TV를 보면서 혹은 쿠키가 구워지는 잠깐동안 내가 50센트 주고 산 장식보를 만들었을 거잖아요.   그 풍경이 한눈에 보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딸아이에게 그리고 할머니의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수다를 떨었지만 딸아이가 축축해진 내 눈을 보고 말았어요.   "난 엄마 아파도 엄마 물건 절대 팔아버리지 않을께"하는 거예요.   모든 것은 순환하는 거잖아요.   정리해야 하고 잊어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   당신이 내게 말씀해 주었지요. 생은 아침이슬과 같다구요.   해가 뜨면 금세 말라버리는 아침이슬 말이예요.   하루는 제법 길지만 생은 너무 순식간이어서 느닷없이 그 속도를 자각하기 시작하면 헛구역질이 날 만큼 어지러워요.   생에 대한 연민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너무 살기 어려워서 가슴에 모랫바람만 불고 욕도 사정없이 막 나오고 눈빛은 형형해 지던 나날을 살고 있을 때 난 당신에게 나를 이대로 미치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요.   그 기도 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지금도 아직 멀었지만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딱 한 곳 인 것 만은 분명하게 알았으니 욕에도 정겨운 마음을 담아서 할께요.  아주 안한다고는 장담 할 수 없어요. 
 레스토랑에 오는 단골 손님 중에 한 노인이 몇 시간을 앉아 커피 한주전자를 다 마시는 분이 있었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형제들도 따로 따로 손님으로 오더군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말이지요.   혼자 앉아 커피만 홀짝거리며 마시다가 화장실에 갔었는데요.   웨이츄레스가 화장실에서 엄청난 냄새가 밖으로 새 나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예요.   한참후에 노인이 화장실에서 나와 밖으로 나갔어요.   웨이츄레스가 난리가 났네요.   노인이 괄약근 조절을 잘 못해서 그만 엄한데다 볼 일을 철퍼덕 보고는 이리 저리 치워 보려고 애썼던 것이지요.   도저히 대책이 안 서니 줄행랑을 친거예요.    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화장실 안에 있었던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그 노인의 마음을 생각해 봤어요.   참담한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면 그것도 측은하고 아무 감정도 없이 빨리 도망이나 쳐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했다해도 측은한 거였어요.   늙는다는 것은 그런거잖아요.   잘 살았어도 못 살았어도 마지막까지 생을 살아냈다는 것, 누군가에게 엄청난 죄를 짓지 않았다면 굴곡진 모든 것은 다 슬픈 영화인 것이지요.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면서 한 사람의 생이 펼쳐지면 때로는 죄 지은 이들의 영혼까지도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구요.   당신은 용서와 사랑의 의미를 그토록 많은 말씀으로 남기셨는데 난 열 네살 때부터 성경을 읽었지만 지금까지 사랑과 용서의 주체가 늘 나였어요.   사랑과 용서를 할 수 있는 자로 살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이런 상황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복 받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뇨 천만예요.  내가 어떻게 사랑과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있겠어요.   난 청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에게 먼저 상황을 이야기하고 청소를 하고 갔다면 마음은 찌질한 측은지심에서 함께 늙어가는 동지애쯤으로 좀 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겼을텐데.   똥만 싸고 도망을 가다니… ‘  사실 그깟 똥 치우는 일이 뭐가 대수예요.   한 인간이 열심히 생을 살아냈는데 말이지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당신은 아직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품고 궁시렁 거리고 있는 저도 보셨을 거예요.   내가 묵묵히 청소를 한 것은 그를 사랑이나 연민해서 라기 보다 그저 일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고백해요.   이 글을 다 마무리 짓지도 못한 다음 날, 하나님 그는 그만 생의 끈을 놓았네요.    인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고 싶다던 나의 마음은 살아있는 자의 욕심으로만 남아 버렸어요.  꾸역꾸역 살아온 자신을 데리고 푸른꿈이 넘실거리던 그의 생애 어느 시절로 돌아가 힘찬 종아리에 힘을 주며 걷고 있겠지요.  
아멘


하얀 새 날아가네 까만 새 날아 오네


고모의 방에는 겹겹이 길이 나 있다
요 속으로, 이불 속으로, 벽 속으로,
 먹나 남은 요구르트병 속으로
요강 속으로, 달력 속의 아라비아 숫자 속으로....
그리고
밖에서 주름진 얼굴로 찾아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름 속으로

비 오는 날
방안에 모로 누워 있던 고모가 문틈 사이로
 장사를 하러 나간다
젊은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바닥만 내려다보며
멈추는 발이 반가워 얼굴을 들면
남편 같은 손님, 어떤 생선을 드릴까요


자배기 속의 생선
팔리지 않은 생선의 뒤척임 같은 날들
살갗이 들뜬 채로 마른 비늘을 털어 내며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맨정신으로는 갈 수 없는 곳
스물 여섯에 보낸 젊은 남자가 숨 쉬는 곳으로
작은 아이들이 있어 살아갈 이유가 있었던 곳으로
길을 내고 있는 홍상이 고모


방안에 담긴 겹겹의 길을 떠도는 고모
모든 길은 빗줄기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이중주라는 걸
이쪽도 저쪽도 없는 에셔의 그림 같은 것이라는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