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왜 슈만의 아내를 사랑했을까요?    열네살이나 많은 클라라를 평생 사랑하고 그녀가 손을 다쳤을 때는 한 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도록 곡을 편곡하기도 했다는군요.   슈만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클라라를 계속 돌봤다고 해요.   세월이 많이 지나 우린 그들이 살았던 아슬아슬한 시간속의 사랑을 기억하지요.   아름답기도 하고 숭고해 보이기도 하고 잔인해 보이기도 하는 사랑은 문학의 아주 좋은 재료가 되지요.   그래서 예술을 하는 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예술의 재료가 되기도 해요.    한 때 평화로우면 문학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평화란 감정적으로 보수로의 전향이 없고서는 가질 수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나태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생활도 생각도 전투적으로 하고는 했지요.   상처는 꽤 여러번 깊이 생겼어요.  그 세월 속에서 쓴 글들, 그런 상태에서 좋아하게 된 그림들, 그런 마음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음악들은 모두 비감하지요.   그 모든 것이 선택이잖아요.    반란을 꿈 꾸던 시절에 반란을 풀무질하던 것들 이었거든요.

난 이제 완전히 보수로의 전향을 끝냈나봐요.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 중의 하나가 나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던 것들을 외면 하는 거예요.
덕분으로 알 수 없는 비문이 많은 시는 읽기도 쓰기도 싫어졌구요.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한 그림도 조용히 외면하게 되었구요.   비감한 음악도 듣기에 너무 무겁구요.   제일 크게는 이젠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믿지 않으니 그런 순전한 얼굴일랑 집어치우라는 냉소적인 마음이 아주 크게
똬리를 틀게 된 것이예요.   마음이 상황을 만들기도 하지만 상황이 마음을 만든다는 생각이 삶을 살며 기로에 서 있을 때 판단을 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구요.  마음을 다지기 보다는 원하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상황을 공을 들여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지혜로운 깨달음 일수도 있는데 옆구리 한켠은 여전히 찬바람이 고이네요.   왜 마음이 먼저가 아닐까요?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했던 마음을 지금의 정신의학으로는 어떤 병증으로 설명할텐데요.   내가 갖고 있었던 그 수많은 병증들이 어쩌면 가장 사람다운 의문과 열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난 그만 지금의 현명함이 너무 건조해서 초저녁 달이나 새벽에 밝아오는 저편의 하늘을 보면 씁쓸한 물이 꾸역꾸역 올라오는 것이지요.    모든 예술이 병증을 치료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텐데 말이예요.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죽는 날 까지 아무도 모르게 병을 감춰야 하는 고독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자신을 망칠 권리가 있다는 프랑소와즈 사강은 사랑은 2년 이상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브람스에 대한 글을 썼어요.   ‘않는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투병의 모습은 사랑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고 싶다는 자기 부정의 삶이였을 거예요.   자신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사랑에 대한 투병을 지속한 브람스와 자신을 망치면서 사랑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사강은 다른 모습이면서 같은 모습이예요.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는 투병을 기록으로 남긴 이들이지요.

난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방향을 잃고 건조하게 말라가고 있지만 당신은 어떠한 삶도 다 투병의 과정이라고 말하는군요.   당신이 옆에 있으니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생은 길어야 백년이라고, 이생의 모든 이들은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군요.


                                                      아멘.

저 끝 어디쯤 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눈이 내린다
흰 숲이 거대하게 자라난다
어쩌면 이곳은 동굴을 찾아 들어가는
맘모스의 뱃속
뱃속을 달리는 붉은 라이트를 향해
눈은 황홀하게 돌진해 온다
두렵도록 뜨거워지는 발바닥
아무도 없다는 것을
대상이 없다는 것을
사랑한다

눈이 내린다
앞서 간 타이어 자국을 따라 달린다
타이어 자국이 사라진 길
어제 한 사내가 목을 맸다
목을 맨 사내의 장례식은 만발한 꽃과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남자의 봄날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무도 그의 발자국을 만져보지 않는다
교회의 종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는 아직도 우울하다

길을 어림 잡는다
위로 치 솟은 나무, 맘모스의 이빨과 이빨 사이로
부드러운 혀처럼 동굴의 끝을 찾아 들어간다
긴장한 근육들의 솔직한 반응
어둠 속에 갇히면 난 왜 오줌이 마려운 건가
어둠의 형체가 드러나는 눈 내리는 밤에
어깨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기고
따뜻하고 싱싱한 오줌을 눈다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