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길을 본능적으로 알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본능이란 늘 감각적인 것과 한 통속이지요.   선한 것과 악한 정보가 함께 부유하다가 어느집 컴퓨터에 앉은 이가 감각적인 것을 클릭하면 이제 그 사람의 머리 속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곁길에서 들어온 씨앗들이 무성무성 자라기도 해요.   문학은 한켠으로 사람의 한계를 위로하는 인간적 명분을 주지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 사람이이라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해요.
오늘은 종일 나 착하게 살라는 교육이나 받지 말걸, 나 하나님 믿지 말걸, 나 글 쓰지 말걸, 나 엄마 되지 말걸, 나 앞서서 일하지 말걸……이렇게 말걸 말걸 말걸 했어요.   내 선하지 못한 마음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막아선 것들이지요.   화장실에 우두커니 서서 캄캄한 하늘을 보다가 화장실 기둥에 기대서 혼자 읊조린 말은 ‘왜 안되지?’였어요.   왜 내가 원하는 것이 선하지 못한 것이 되었지?   내가 원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모두 외면해 버리고 싶었어요.  글도 쓰기 어려운 삶을 살아온 것이 오히려 오랜 세월 글을 쓰도록 하는 오기의 발화점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내가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도 글을 쓰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구요.   정호승 시인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고 했을 때 난 묻고 싶더군요.   당신은 그럴수 있나?    하긴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을 몸으로 하면 그게 작가일까요.   정호승 시인도 그리 하지 못하니까 그런 시를 쓸 수 있었을 거예요.    누가 그러더군요.   “넌 너를 유지 할 수 있는 힘이 생활에서 나오는군아.  그걸 감사 해야겠다.”   미치고 팔딱 뛸 말이예요.
조금은 나쁜년으로 살아도 된다고 말해 주세요.    하지만 늘 주님이 가신 길을 빗대어 온유한 미소만 지어 주시는군요.   당신의 온유함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위로가 다 무겁게만 느껴질 때 내 안에서는 자기 파괴의 본능이 살아나요.   난 알지요.   신앙인으로 사는 한 나는 나를 파괴 시킬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것을요.  그렇게 마음속의 전쟁을 치루다 보면 그저 말 하지 않고 엎드려 가던 길을 갈 밖에는 아무 길도 내게 주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얼마나 소소하게 아름다운 일들이 많은지요.   그런데 난 사람이 얼마나 얇고 얕은지 나를 보고 알아요.    내 마음이 편해야 소소한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내 마음이 지옥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쩌면 저렇게 아무런 가책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그런 이들과 한패가 되면 안되는 사람들도 그들로부터 얻어질 정신적 물질적인 기대로 또 한패가 되어 무리가 커져 돌아가요.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그리고 이미 잔뿌리가 되어 내가 속한 작은 커뮤니티에도 그런 양상은 너무도 뚜렸하게 나타나지요. 내가 분노하는 것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서 욕심의 기대치가 무너지니 화가 나는 것은 아닐까요?   내 마음속에 화가 차서 아름다운 것도 눈에 안보이고 나를 파괴 시키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내가 살며 얽힌 인연들 다 집어치우고 훌훌 혼자 아프리카로 행장을 꾸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수시로 들락거려요.  사회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한 부차적인 것들이 관습을 거쳐 법이 되었으니 사실 옳고 그른것도 없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러한 내 마음의 불안까지도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사람 사이로 나가라고 내게 명령하지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스스로 거룩의 옷을 입은 사람들과 구별되려는 수작일지도 몰라요.   이런 것도 교만의 모습이라고 가르치셨으니 다만, 하루종일 말걸 말걸 말걸 하는 이 모습 까지도 당신에게 모국어로 써서 모두 보여 드려야 숨통이 틔일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써요.  

아멘


모국어

너는 내 입 속에서
내 손 끝에서
모든 표현의 수장이 되었다

내가 또 다른 말을
입에 담기 시작하면서
넌 자꾸 뒷 걸음을 치는구나​
네 신발을 딱딱한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놓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갈아입었던 옷은
기억하지 못하고
광목 저고리 하나만
입혀 두는 날이 많아 졌다​

네가 나를 동구밖에서
찬란한 유혹의 문장들​을 휘날리며 꼬실 때
한달음에 뛰어나가던 나는
밥그릇에 담긴 이국의 말을
퍼 먹고 있다

네가 그립지만
모든 경계가
슬금슬금 무너져 내린 이후의 생은
첩년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넌 가끔 불러내 얼굴만 보는
아릿한 애인이 되어
봄밤처럼
그렁그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