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 전 이야기라고 하는군요.  미현이가 이십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군요. 경호라는 청년과 일년 정도 만났었다고 해요.  청년은 순수했지만 미현이는 자기의 감정이 제일 중요한 이기적 성격이였다고 하구요.   미현이를 좆아다니던 늙수구레한 청년이 꼴보기 싫어서 이눔아~~떨어져 나가라 하는 마음으로 순수청년을 만난 것이였대요.   깜찍한 아가씨는 늙다리 청년이 떨어져 나가자 슬슬 순수청년이 답답해 지기 시작했지요.  냉정하기는 얼음물에 동동 뜬 밥알처럼 새초롬하게 앉아 이별을 통고해 버리고 말았다고 해요.    청년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워낙 미현이가 여유를 주지 않아 매달려 보지도 못하고 말았대요.   청년은 그 뒤로 자살 시도를 했었지만 치료받고 곧 결혼하여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끝으로 미현이의 기억에서 청년은 사라졌대요.   28년 뒤 미현이가 듣게 된 뒷 이야기는 이러해요.   청년의 어머니가 아들이 만나는 아가씨의 궁합, 사주를 보니 아주 고약하여 이 둘을 떼어 놓으려는 작전에 들어간 것인데요.   그 즈음에 미현이는 순수청년 어머니의 계획은 까맣게 모른채로 그저 권태로운 만남이 싫어서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청년은 어머니의 사주팔자 정보가 깜찍아가씨에게 새 나가서 미현이가 화가 나 헤어지지자고 한 것으로 오해를 했던 것이지요.  청년의 마음 고통은 두배로 치달았던 것이지요.   어머니 봐라, 미현이 봐라 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것이지만 미현이도 청년의 어머니도 이런 일 따위는 인생 살이에 있어 별거 아닌 것인줄 진즉에 알았던 것이였던 모양이네요.    청년은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소개해준 여자와 바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해 곧 헤어졌다는군요.   수 십 년을 혼자 살다 서서히 눈이 멀어가고 있는 병에 걸린 것인데요.   아주 안보이기 전에 미현이를 보고 싶지만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기도 싫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인데요.   소식을 들은 미현이는 여전히 깜찍하게 어휴 찌질~~이러면서 쌩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러면서도 “어쩌지?”하며 내게 묻는 얼굴이 참 착잡해 보이는군요.

196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감동의 물결이 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그렇지 않았어요.   왜 일까요?  청년이나 미현이나 영 맘에 들지 않는 거예요.   저들은 사람의 관계를 우숩게 생각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예요.   저들은 모두 신파다.   뭐 이런 마음이 들었지요.   요즘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에 익숙해 져서 그런지 60년 70년대의 신성일 버전의 신파는 영 아니지요.    스토리에 등장하지 않는 청년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가 되었던 사람과 둘 사이의 아이들은 저 신파적인 인생 스토리에서 뭐인거죠?
난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미현이는 깜찍하게 잘 살고 있으니 냅두고 청년의 캐릭터만 좀 바꿔 봤어요.   사랑은 사랑이고 책임은 책임이고 인생은 인생이라고 분리 시킬 줄 아는 캐릭터로 바꾸고 순애보 스토리는 적당선에서 살려두면 청년이 좀 멋있어 지지 않을까요.   눈이 안보여도 그것을 대비하여 자신을 준비시키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최종적으로 자식들의 아버지로 잘 마무리 되는 삶을 계획하며 사는 것, 훗날 모든 경계가 살아질 즈음 미현이와 재래 시장의 순대국 집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어깨나 두드리며 반가워 하는 그런 풍경이 그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모두 해피엔딩이였으면 좋겠어요.   내가 미현이에게 한 말은 “너 살던대로 살아.  니가 뭘 할 수 있는대!!!!” 라고 데면데면 말했지요.   그리곤 또 이런 말도 덧붙였어요.   “전화나 한번 해서 예수나 믿으라고 해.!!!”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궁시렁 거리네요.  ‘우리 엄마 캐릭터 정말 이상해 지고 있당~~!!!’
하지만 당신은 아시지요.  나도 성경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단지 모든 삶은 제 몫이라는 거요.  저도 시를 쓰면서 나의 깊은 인간적 사랑과 고뇌의 감정이 어떤것인지 아니 이런 시를 해바라기에 비유하여 털어놓거든요.   사람의 감정 중에서 남녀간의 절대적 사랑이 형성되는 시기가 어쩌면 가장 화려한 시절일지도 몰라요.   모성 다음으로는 남녀 간의 사랑 만큼 발열이 강한 사랑은 없을거예요.   그럼에도 그들이 생을 전체적으로 보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슬픔의 다른 이름은 견딤과 인내인 것만 같아요.   당신이 젊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아멘.


바람 편린 (片鱗) 


몇몇은
길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집에 깃들어 볕을 쬐고 있다
느리게 떠 다니는 먼지를 센다
하나, 두울, 세엣
그대, 어서 나오시라 
밖은 발랄한 새싹들이 지천이다

누구를 기다리나
수 십 번 계절이 바뀐다
어느 한 시절에 머리카락을 묻고 
거꾸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
풍경 속에서 오려진 사람들의 시린 발가락이
허공을 더듬는다
붉은 구두를 신어 볼래?
아니면

에탄올을 천천히 마시는 중년의 남자들
기억을 소독한다
지난 날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사람들은
찬란한 햇빛 사이에 끼인
수유리, 낡은 동네 어귀에 서 있다 
봄바람에 행복한 얼굴들은 이미 밋밋하지만
그 누군가는
여전히 애닯픈 연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