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으로 여러 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잘못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가 發病 원인이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해온 생활 습관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채식주의자임을 자부하며 살아 왔으나, 너무 금욕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기도 하지만 사회생활도 원만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절한 절제, 적절한 관대함이 있어야 한다는 “中庸”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제 생선은 물론 그 동안 금기했던 red meat도 낙농제품도 심지어는 삼겹살 요리도 적절하게 섭취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문한 김에 머물게 된 수개월간의 한국 생활은 내 心身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치료 받는 韓醫院 가까이에 숙소를 마련하였으나 한의원엘 가려면 작은 市場을 지나야 했다. 市場은 서민들의 활발한 삶의 현장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들리는 소리, 보이는 풍경, 그리고 소박한 이웃들이 모두 나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친구, 아니 선한 천사로 다가왔다.
 시장 모퉁이에 텐트를 치고 더덕이나 연근 등 우리 농산물을 파는 부부가 있었다. 내가 지날 때 마다 유심히 바라 보고 있음을 눈치 채고 물건을 사는 척 어느 날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머니 모습이 멋있게 보여서”라는 그들 부부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었다. 오며 가며 그들과 나누는 인사가 하루의 즐거움이 되었다.
시장 뒷 골목에는 “들깨랑 칼국수랑” 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토속적 분위기의 실내는 의외로 깨끗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젊은 부부가 주인이었다. 바쁜 중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그 집 주인은 “들깨 가족”이라는 나의 글을 인상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식 재료로 쓰는 들깨는 고향의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 지어 보내주시는 것이라는 자랑도 했다. 
별안간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우산도 없이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할머니!”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돌아다 보니 “들깨 칼국수”집 주인이 우산을 들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그 집에 들르면 차곡 차곡 모아 놓았던 신문을 내어 준다.  그 곳에 갈 때마다 신문을 찾아 읽는 나를 눈 여겨 본 것이었다. 객지에서 신문을 정기 구독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렇게 못 잡수셔서 어떡해요?” 식욕이 별로 없어 보이는 나의 식탁에 자신들이 먹는 별식을 내어 놓는 그들도 참으로 친절한 나의 이웃이었다.
바로 옆집은 미장원 “Charming Hair”, 예쁜 간판이 주변을 밝힌다. 젊은 여주인에게 나는 아침 마다 나의 외출을 알린다. “치료하러 한의원에 갑니다” “친구 만나러 인사동에 다녀 올게요.”  “강남 딸네 가서 저녁까지 먹고 올 겁니다.” 돌아 와서 歸家를 알리면 그녀는 충실한 비서처럼 그 날 일을 보고(?) 한다. “할머니 조카라는 분이 오셨었어요.”라든가 “보자기 권사님이 이걸 맡기고 가셨어요.” “보자기 권사님” 이란 내가 만난 또 한 분의 천사였다. .
 당신도 나처럼 몸이 아파 고생한 적이 있었다는 그 분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하게 되었다. 깨끗한 보자기에 음식을 싸다 주시는 그 분을 우리는 ‘보자기 권사님”이라고 불렀다. 따끈한 콩나물 국이나 구수한 비지찌개. 오이지 무침과 가지 나물. 때로는 풋고추 조림 등 식당에서 쉽게 사 먹지 못하는 Home Made 음식으로 입맛을 돋구어 주신 보자기 권사님을 내 어찌 잊으랴?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한 것,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그 분과 자주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은 밥상” 집 역시 기억에 남는다. 한때 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다는 홀어머니와 따님이 운영하는 정결하고 작은 음식점은 동태찌개가 일품이다. “작은 밥상” 이라는 상호처럼 작은 냄비에 끓여내는 동태찌개를 먹으러 가끔 들리면 “롱타임로씨유” 서투른 영어로 나를 반긴다. 내가 먹다 남은 음식에 한 술 더 보태어 포장해 주는 그들의 친절로 나는 다음 날 아침을 충분히 때울 수 있었다.
주말마다 약방 앞에 펼쳐 지는 露店(노점)은 액세서리를 파는 “총각네” 가게다.  어느 날, 교회에서 받은 백설기 떡을 그에게 건넸다. 어느 예술 대학에서 수학했으나 합당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좌판을 벌리고 있다는 그의 딱한 사정을 나는 이웃 상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며칠 후 시장거리를 지나는 나를 그가 불렀다. “이건 제가 특별히 만든 겁니다.” 채색이 아름다운 가죽 브로치였다.
“그날 주신 떡이 제게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만나” 같았습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많은 손님들이 계속 몰려 오는 바람에 점심도 못 챙기고 있던 차에 내가 건넨 백설기 한 조각에서 힘을 얻었노라고 하는 그는 교회의 집사라고 했다. 당뇨 체질인 나로서는 먹기를 삼가는 백설기 한 조각이 그에게는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린 “만나”와 같았다니 이 무슨 황공하고 감사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
한국의 碩學 이어령 선생이 쓰신 “詩人의 마을”을 기억한다.
“ 한적한 시골에 사는 한 사람이 땔감을 준비하려고 도끼로 나무토막을 쪼개려 하는 순간, 마른 나무토막 한 귀퉁이에서 뾰족이 올라오는 새 싹을 발견했다. 그는 차마 나무 토막을 쪼개지 못하고 마른 목을 축이려 우물가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또 두레박 줄을 타고 기어 오르는 한 줄기 나팔 꽃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하찮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는 그가 사는 곳을 “詩人의 마을”이라고 한다면, 친절과 사랑, 타인에 대한 배려가 구석 구석에 배어 있는 市場 거리 또한 “詩人의 마을”이 아닐까?  (2016 / 7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