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를 다 무너뜨리고 아니 생성되지도 않는 그런 사람, 아무 이야기를 해도 고개를 끄떡여 줄 사람과 밥을 한끼 먹고 싶어요.   나에게는 고질병이 있잖아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거나, 아주 못 믿거나 하는 딱 두가지 길 밖에 모른다는 거요.   사람을 그대로 믿으면 온 마음이 쏠려서 그냥 콱!!! 이유없이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둔갑해 버리거든요.   친분이란 시간 흐름에 따라 농도가 달라지잖아요.   나는 그걸 잘 못해요.   오래된 사람들도 그냥 친구고 금방 사귄 사람도 믿어지기만 하면 아주 오래된 친구가 되는 거지요.   그건 내 마음만 그렇다는 거지 상대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예요.
아주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난 후에 내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는 다시 다가 오는 인연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또 참 이상해요.   사람의 인연이란 시기와 때가 있어서 나중에 다가온 인연에게 무조건 친밀함이 다시 생기지는 않더라구요.   조금씩 조금씩 친해지는 시기를 거치다가 잘 맞으면 친구가 되는 것이고 안 맞으면 말아버리면 되는 것인데 모든 것에서 적당함이 없는 내 잘못이지요.   무슨 생각을 뒤에서 하고 있는지 읽히지 않는 사람과 생활의 전반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경계를 하게 되요. 생각해 보면 상처가 될 수 있었던 인연을 상처를 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내 청춘의 특기였어요.  
이런 일도 기억 나네요.   나와 아무런 친분이 없이 전 직장에서 내가 하던 일을 감사하던 기관에서 일하시는 분께 이력서를 무턱대고 들이밀고는 취직을 시켜달라고 했었어요.   그분은 적당한 자리가 나자 나를 취직시켜 주었지요.   내 마음은 일만 잘하면 됐지라는 생각이였지만 아무런 인연이 없던 내게 취직을 시켜 준 그분은 조금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예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자 저녁 식사 대접을 하는데 그분이 내 옆에 와서 슬쩍 앉더라는 것이죠.    나는 아주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했어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평생 존경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분은 잠시 숨을 고른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셨고 난 다시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지금 이 이삼분간은 제 기억에서 없습니다.”   그 뒤로 난 다시 해맑게 웃으며 저녁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만나지는 않고 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꼭 감사카드를 보냈어요.   지금에 와서 그 기억을 끄집어 낸 것은 그 분은 세상의 시류에 잠시 감정이 흔들렸는지는 몰라도 선한 마음을 가진 남자라는 것이지요.   그 뒤로도 직장에 관련된 일은 잘 돌봐 주셨으니까요.    이와 유사한 일들을 청춘을 지나오며 몇 번 겪으니 나에게 그런 구별잣대가 생긴거예요.   
이제 난 구별잣대를 분질러야 할 때가 된 것을 알아요.   사람은 기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씀 하시며 제 밥 숟가락에 김치 올려 주신 오늘, 난 내 안의 구별 잣대를 분질러 버리겠어요.   사람의 마음에서 선함을 끌어내어 인연을 맺는 사람이 되겠어요.   미리 겁먹지 않겠어요.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고 그 마음에 선함이 없다는 판단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요.   그들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신중한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모든 입장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일 수 있으니 이젠 좀 넉넉해 보려고 해요.  내 속성을 속이는 거짓말이 되더라도 한 번 쯤은 사람의 태고적 순결함을 믿어보는 것이지요.
아멘.

안개

아주 잠깐만 다녀온다고 나선
내 순한 마음이
밤새 어디를 다녀왔는지
부우옇게 몸을 부시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약간의 냄새를 갖고 있는 안개는
잠깐 그렇게 울고
말짱하게
거짓말하러 햇빛 속으로 걸어간다
[엄마의 연애 –푸른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