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 간 닥터 애론
수련생 중에 닥터 애론이 있었다.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잘 단련된 몸매의 사내였다. 누가 봐도 호감 가는 사람이었다. 규칙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해 와서 탄탄한 근육에 힘이 넘쳤다. 학창시절 레슬링과 미식축구 선수였다고 했다. 태권도 빼곤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런 사람이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집중력도 좋아 실력이 부쩍부쩍 늘어갔다. 그런데 가르치다 보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뭐 하나 가르치면 그 원리를 묻고 또 물어왔다. 워낙에 똑똑한데다가 호기심이 강하니 대충 설명할 수가 없었다. 동작 하나 하나의 주안점이며 이것이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그냥 마구잡이 주먹질하고 태권도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태권도나 동양 무술 안에는 자기가 모르는 어떤 신비한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에 대해서 물을 때면 참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알아봐야 의사만 하겠는가. 게다가 다분히 실전적이었다. 그냥 대충이 없었다. 발차기를 하면 정말 맞아주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사단이 벌어졌다. 수업 중에 상대 목을 당겨 넘기는 호신술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상대가 지금처럼 기술 안 받아 주고 힘으로 버티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사실 대부분의 요란한 한 기술들은 실전에 써먹기 힘들다. 그러니 연습할 때 서로 받아주고 넘어가 주고 해야 통한다. 다른 사람들은 ‘아, 이런 기술도 있구나.’ 하며 재미있게 넘어가는데 닥터 애론은 틀렸다. 자기가 버텨 볼 테니 나보고 한 번 넘겨보라는 것이었다. 다들 나와 닥터 애론을 번갈아 쳐다봤다. ‘에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할 수 없이 상대를 했다. 목을 잡고 당겼더니 하체를 뒤로 딱 빼고 내 손을 잡고 버티는 데 내 힘으론 꿈쩍도 안했다. 망신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씨름 기술이 생각났다. 닥터 애론은 내가 당기는 것에 대해 죽도록 버티고만 있었다. 그게 허점이다 싶었다. “무인(武人)들이 바보가 아니지. 당겨서 안 오면 밀어야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전에 왼손으로 오른 다리오금을 잡아당기며 어깨로 팍 밀쳤다. 닥터 애론이 확 뒤집어졌다. 그리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구르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사태 파악이 안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운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닥터 애론, 네가 의사니까 알 것 아냐? 왜 그래?” 그랬더니 무릎이 너무 아프단다. 얼음주머니로 무릎을 싸서 수건으로 동여매고 부인을 전화로 불렀다. 길 건너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부인이 급히 달려와 병원으로 실어 갔다.
수업시간에 수련생이 다쳐 쓰러지는 것만큼 애간장을 태우는 일도 없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것이 낫지 누군가 다쳐 실려 가는 꼴을 보면 내 명(命)이 막 짧아지는 것 같다.
며칠 후 닥터 애론이 붕대를 칭칭 감은 다리로 양손에 짚고 목발을 짚고 찾아왔다. 무릎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받았단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더 이상 태권도는 못하겠다고. 미안하기야 내가 더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더니 도리어 아니라고 했다. 사범님한테 함부로 덤볐다가 당한 거니 자기 잘못이라며 웃어줬다.
닥터 애론이 하는 병원이 동네에서 꽤 잘되는 곳이다. 환자들이 진료 받으러 갔다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의사를 보며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Master Lee한테 당했다고 했단다. 마을이 작다 보니 소문이 돌았다. ‘태권도 사범이 그 훤칠한 닥터를 잡았다네.’

위력격파와 골병
초등학생 때 팔 다리가 몇 번은 부러져야 사범이 될 수 있다는 은사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무서워 난 사범은 절대 못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범이 되고 돌아보니 그 말씀이 딱 맞았다. 정말 팔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영어 짧은 한국 사범이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해선 위력격파를 자주 했다. 워낙에 흑인들이 점프력이 좋아 내 점프로는 웬만한 뛰어차기를 보여 봐야 아무 감흥도 없다. 그러니 다칠까봐 두려워 못하는 위력격파가 주 종목이 되었다. 위력격파 재료들을 여러 가지 생활용품에서 찾았다. 주위에서 흔히 보던 물건들은 그 강도를 알기에 더욱 효과가 있었다. 시간 나면 건축자재상에 나가 뭐 새로운 것 없나하고 둘러본다. 그러다가 벽돌 몇 장만 들고 나오면 농담하기 좋아하는 점원들이 말을 건다. “뭐야, 고작 빨간 벽돌 몇 장으로 집이라도 짓게?”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다. “아니, 발로 차게.” “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냥 취미야.”
 
(싸고 효과적이어서 시범에 주로 사용했었던 빨간 벽돌들, 덕분에 골병만 늘어갔다.)

발차기로 송판대신 블록을 차는 격파를 하곤 했었는데 이게 재료를 잘 보고 골라야 한다. 파는 곳마다 재질이 틀리다. 한 시범에서 여느 때와 같이 뒤차기로 블록을 찾는데 뒤꿈치가 깨질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얼마나 뜨겁고 화끈거리는지 발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금니를 꽉 깨물고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걸음마다에 쿵쿵 뼈를 저미는 통증에 숨까지 막히고 아찔아찔했다. 차로 돌아와 살펴보니 발목까지 퉁퉁 부은 것이 뒤꿈치 뼈가 깨진 것 같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제껏은 이렇게 안 아팠었는데?’ 그 뒤로 몇 달을 까치발을 들고 절며 다녀야 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평소에 쓰던 시멘트 블록이 아닌 자갈이 팍팍 들어가 박힌 콘크리트 블록이었다! 시멘트 블록은 모래와 시멘트가 주 원료이다. 비교적 잘 깨진다. 콘크리트 블록은 자갈이 들어가 박혀 있어 훨씬 무겁고 단단하다. 색깔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강도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처음에 이게 구분이 안됐다. 격파물에 대한 지식이 짧아 이렇게 손발이 고생을 했었다.
마을 건축자재상에 가서 2인치 두께 블록 좀 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도 “너 혹시 Master Lee냐”고 묻는다. 네가 맨손으로 블록 깬다더니 오늘 그거 사러 온 거냐는 거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악수 한 번 하자고 한다. 역시 손에 기운이 틀리다, 손이 저리다는 등 자기들끼리 별별 소리를 다한다. 그러면 웃어만 준다. 어떻게 생각하건 그건 자기 맘이니까.  
     
부러진 야구배트
평소 나를 만만히 보던 터프 가이(Tough guy)가 있었다. 자기도 특공대 출신이고 성질도 있다는 걸 은근히 과시했다. 그러다 보니 말투며 행동도 그 까짓 태권도 사범쯤이었다. 그러니 볼 때마다 내심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범을 하는데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길 래 불러냈다. 힘 좋은 사람이 필요하고 하니까 기꺼이 나왔다. 야구배트를 주며 배팅 하듯이 꽉 쥐고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잡고 있는 배트를 뒤후려차기로 찼다. 내 뒤축에 맞은 배트가 퍽! 소리와 함께 부러져 저만치 날아가 쳐 박히고 그는 손잡이만 들고 서 있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자기가 잡고 있었으니 배트가 꺾여 나갈 때 충격을 손으로 느꼈을 것이다. 대번에 태도가 달라졌다. ‘정말 그게 부러지더라. 와~! 태권도 다시 봤다!’ 그 뒤론 볼 때마다 먼저 웃고 인사를 하는데 그러고 나니 나도 대하기가 편해졌다.
 
(야구배트는 데드 스팟(Dead spot)을 차서 꺾어야 한다.「태권도의 과학」 P.176 참조)

조지아에서 열린 태권도시합 개막식에서 한국 사범님들 끼리 시범을 하기로 했다. 다들 애틀랜타 지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난 시골 촌 동네 사범인데다가 위력격파 밖엔 할 게 없었다.
다른 사범님들이 최신형 발차기로 날아다니며 격파를 하는 동안 난 열심히 보조를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야구 배트 두 개를 청 테이프로 묶어 허공에 들게 하고 뒤후려차기로 차는 것이었다. 다른 사범님들이 한 번에 두 개는 무리가 아니겠느냐고 걱정들을 해 주셨다. 땅에다 대놓고 차는 거야 별 문제 아니지만 공중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차려면 스피드와 힘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전 주 시범에서 콘크리트 블록을 뒤차기로 찼다가 발뒤꿈치가 깨졌고 야구배트를 발등으로 차서 이미 발등이 멍이 들어 있었다. ‘까짓 거 한 번 죽도록 차고 몇 주 쉬지. 뭐.’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힘을 다해 뒤후려차기로 찼다. 퍽! 하는 소리가 났지만 배트 하나만 꺾였다. 뒤축에 불이 났다. 다시 한 번 뒤후려차기로 찾다. 부러지지 않았다. 뒤축이 아프니 도저히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창피했다. 갑자기 배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오기가 발동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내야지 않겠는가!’ 뒤축은 더 이상 쓸 수 없겠다 싶어 돌려차기로 차겠다고 했다. 하지만 발등도 상해있긴 마찬가지였다. 힘껏 돌려 찼더니 간신히 배트가 꺾이긴 했지만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불에 지진 듯 발이 뜨겁고 아파 도저히 못 차겠다 싶었는데 관객들이 의샤! 의샤! 응원을 해주었다. 어금니 꽉 깨물고 한 번 더 돌려 찼다. 그제야 배트 두 개가 완전히 분리되어 날아갔다. 한 번에 끝냈지 못해 민망했었는데 관객들이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 주었다.
관객 중 한 가족이 부러진 배트를 주워들고 와서 함께 사진을 찍고 배트에 사인을 받으며 그렇게 여러 번 차도 발이 안 아프냐고 감탄을 했다. ‘안 아플 리가 있나? 안 아픈 척 하는 거지!’ 불붙은 것 같이 화끈거리는 발로 저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애먹은 날이었다. 

거북이 등짝 된 주먹
캐나다와 미국을 가르는 바다같이 큰 호수가 있는 펜실베니아의 이어리(Erie)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권도시합에서 우리도장 시범단이 개막시범을 했다. 관객들이 태권도 시합을 하러온 태권도인들이니 대충 할 순 없다 싶어 단단히 맘먹고 시범에 임했다. 내 주먹 격파순서가 되었다. 주먹머리로 5인치 두께의 송판을 조준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무리 없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송판의 생김새였다. 이 시합을 주최하신 관장님 지론이 송판이 너무 쉽게 깨지면 격파에 의미가 없다는 것 이셨다. 그래서 이 시합장에선 두꺼운 송판을 쉽게 깨지지 않도록 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에 가깝게 잘라 쓰고 있었다. 더구나 사이즈도 컸다. 죽을힘을 다해 주먹을 질렀다. 체육관이 다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며 송판들이 박살나고 송판을 잡고 있던 보조자들마저 뒤로 나가 자빠졌다.
갑자기 손에 감각이 없어지면서 마치 주먹이 그 자리에 붙어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연이어 손끝 격파를 해야 되서 돌아서서 다음 송판을 조준하는데 내 눈앞에서 손이 쑥쑥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예삿일이 아나구나 싶어 죽을 맛이었다. 이런 상태로 손끝을 질렀을 때 느껴질 고통이 공포로 느껴졌지만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내 질렀다. 또 다시 송판은 깨지고 연속으로 손날 위력격파에 손날등 위력격파까지 끝내고 인사하고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뚜벅뚜벅 걸어 나왔지만 너무 아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개막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와서 악수를 청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웃으며 다 받아주었다. 악수 할 때마다 잘 봤다며 손을 꽉꽉 쥐는데 너무 아파 머리카락까지 쭈뼛쭈뼛 서 올랐다. 손을 쥘 때마다 고통을 참고 있으려니 아찔아찔하며 숨이 막혀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한쪽 구석에 숨어 비로소 내려다 본 손은 마치 고무장갑에 훅하고 바람을 불어 넣은 것 같이 보였다.  우리 시범단원들도 내 손을 보고 난리가 났다. 손이 그렇게 커져도 괜찮냐고, 병원 안가도 되냐고 물었다. 이 정도쯤은 수련 과정에서 이미 많이 겪어봐서 괜찮다고 허세를 부렸다. 아내만 내 심정을 알고 속이 타고 있었다. 
밤새 손이 아파 쩔쩔매면서도 얼음찜질과 스프레이 파스로 때웠다. 미국의 살인적인 병원비가 무서워서 그랬다. 인대 끊어지고 수술 받았을 때 그 돈을 갚기 위해 삼년을 고생했던 기억에 이 손을 들고 병원을 가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삶에 또 다시 어려움이 미칠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사범이 돈이 없어 의료보험 하나 없이 산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버텼다. 그 뒤로 반년 동안은 손을 쥘 수조차 없었다.
일 년이 지나 손에 힘도 좀 돌아오고 이제 다 나았다 싶어 다시 위력 격파를 했는데 뼈가 손등으로 툭하고 솟아 올라왔다. 너무 아팠다. 이게 바로 골병이란 거구나 하고 느껴졌다. 주먹이라면 자신 있다고 어지간히 혹사시켰더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 뒤론 주먹을 ‘느끼며’ 산다. 항상 통증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손이 아파 돌려 따는 병뚜껑은 아내가 대신 따주기도 한다. 괜한 객기를 부리며 산 탓인 것 같다. 적당히 타협도 하고 무모한 짓은 좀 덜해가며 살았어야 될 일을 젊다고 만용을 부리다 얻은 혹독한 결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