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훈련 되살리기
가끔씩 유단자들과 함께 야외훈련을 가길 좋아한다. 내가 영어를 제대로 못하다 보니 나를 좀 더 신비나 전통에 가까운 사람으로 오해들을 한다. 무술 영화에 보면 주인공들은 항상 깊은 산중의 절이나 오두막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스승으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속세로 내려와 천하를 평정한다.
가끔 수련생들이 Master Lee도 산이나 절에서 훈련받아 본적 있느냐고 묻는다. “물론이지!”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학창시절 새벽은 구보로 고향 땅이 다 내려다보는 산 중턱에 있는 절까지 뛰어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절로 오르는 돌계단을 뛰어 오르내리거나 절 주위를 돌며 체력훈련을 하고 약수 물 떠 마시고 내려오는 것이 새벽 일과였다. 여름 전지훈련 삼아 산 좋고 물 좋은 계곡에 들어가 훈련도 좀 하고 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고 훈련 중간 개구리 잡아 간식하던 추억도 있다.
폴(Paul)과 네이든(Nathan)이라는 청년 둘이 자기들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산중 전통훈련을 받을 수 없겠냐고 하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한 번만 시켜달라고 간청이었다. 잘 못하면 사부님이 막대기 같은 것으로 막 때리던데 그런 것도 당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녀석들이 진짜 안 맞아봤군.’ 그럼 훈련을 받다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내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오라고 했다. 그러면 나도 시간을 내보겠다고. 그런데 다음 날 둘이 정말 각서를 써서 사인까지 해왔다. ‘그래? 좋았어! 매운 맛을 보여주지!’ 이 훈련은 자발적인 자신과의 싸움이니 힘들면 언제든 기권도 받아준다는 조건을 달았다. 죽을 것 같으면 스스로 포기하라! 자기들은 절대 포기 안 할 거라고 다짐을 했다.
주말 아침 일찍 차를 몰아 인적 없는 산으로 들어갔다. 한참 산길을 달려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 트럭을 세워두곤 거기부턴 걸어들어 갔다. 난 배낭 가득 물통과 도시락을 넣고 이것저것 필요한 도구들과 만일을 대비해 구급상자까지 챙겨갔다. 그리고 모처럼 죽도하나 옆구리에 빗겨 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작은 통나무 끌기. 가서 자기만한 통나무 하나씩 구해오라고 했다. ‘오늘 하루 어디를 이동하던지 너희는 이 통나무와 함께 간다! 업고 가든 끌고 가든 끝까지 간다.’ 먼저 밧줄로 통나무 끝을 동여매고 한걸음 걷고 당기고 한걸음 걷고 당기는 식으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라고 했다. “이동!” 난 배낭을 메고 뒤따라 걸었다. 시작하자마자 비지땀에 흠뻑 젖고 숨을 헐떡인다. “왜? 힘드냐? 그럼 기권하고.” 절대 포기 안한단다.
마침내 산 위에 올라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주곤 둥근 쇠 공 두 개를 꺼냈다. 비탈길에 아래로 힘껏 던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쳐다보면 뭘 하나 하는 눈치였다. “당장 뛰어 내려가 집어 갖고 돌아온다. 늦는 놈은 죽는다. 실시!” 둘이 불이 나게 뛰어 내려갔다. 공을 집어 올라오면 또 던지고 또 집어 올라오면 또 던졌다. 공 잡으러 뛰어 내려가다 공이랑 같이 굴러가기도 하고. 한참을 시키니 다리가 풀려 거북이 산등 기어오르듯 어기적거리며 네발로 기어 올라왔다. 이쯤 되면 목이 안 탈 수가 없다. 물병을 따서 나 혼자 마셨다. 그리곤 남은 물을 천천히 땅에 쏟았다. “물 다 버리기 전에 다시 내려갔다 온다. 남는 물만 마신다. 뛰어!” 흙바닥으로 꺼져가는 물을 잠깐 쳐다보더니 죽도록 뛰어 내려갔다. 이런 고생 끝에 물을 마시니 물이 이렇게 달았는지 몰랐다며 물병을 비웠다.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오르며 발차기, 나무 숲 사이를 빠져나가며 발차기, 나뭇가지 뛰어 차기, 바위 타고 뛰어 오르기 등을 했다. 나무둥치에 자전거 튜브로 발 묶어 놓고 발차기 천 번! 손에 쇠사슬 뭉치를 감아주고 주먹 지르기 천 번! 한사람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휴식. 쉰다고 그냥 쉬나? 고목나무 위에 매미. 나무에 매달려서 휴식! 말라죽은 나무들 쓰러질 때까지 치기. 나무를 상대로 계속 팔다리 뻗어 겨루기, 동작이 쳐지면 죽도로 맞기. 둘이 마주 보고 겨루기. 한발이라도 물러나는 쪽은 뒤에서 죽도로 맞기. ‘오직 전진, 앞으로!’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얻어맞고 한나절을 끌고 다녔는데 지쳐서 어기적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냈다. 여기저기 훈련장소를 옮길 때마다 통나무를 어깨에 지고 다녔다. 갈수록 통나무 무게가 무거워졌다. 

(철마다 이어지던 폴과 네이든의 산중수련)

이번엔 조약돌이 듬성듬성 깔린 마른 흙바닥에서 낙법을 시켰다. 푹신한 매트 깔아 놓고 하는 낙법은 누군 못하겠나? 이런 곳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게 진정한 낙법이다. 실시! 한번 구르더니 아프다며 죽는시늉을 했다. ‘그래도 굴러! 싫으면 기권하고!’ 기권은 못하겠다며 온갖 비명을 지르면서 굴러 다녔다. 구경만 하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맨몸으로 연병장을 구르던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한 번 굴러 봤다. 그런데 '이게 아닌데?' 싶었다. 단단한 흙바닥 위를 구를 때 조약돌이 콱콱 등에 박히는데 아예 살을 파는 느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툭툭 털고 일어나 윗옷을 벗어 보라고 했다. 윽! 각서 받아놓길 잘했지....... 등판이 다 패여 여기저기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꿈치들도 피부가 다 까져 속살이 드러나고 피가 나고 있었다. 
다음은 산길 뛰기. 뛰어서 약 2마일 거리에 목표점을 설정하고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난 정확히 5분 뒤 트럭을 몰고 출발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으니 따라 잡히면 팬케이크 된다. 살고 싶으면 달려라!’ 둘이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뛰었다. 잠시 후 창문은 내리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여유 있게 뒤따라갔다. 전통훈련과 전혀 상관없는, 내가 군대에서 당했던 고문들을 이 녀석들에게 써먹고 있었다.
저 만치 보니 한참을 헉헉대고 뛰던 폴이 다리를 삐끗하는 것 같더니 심하게 절며 뛰었다. 내가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가 ‘힘들면 포기하지?’ 하자 뒤를 돌아보는데 깜짝 놀랐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눈이 반쯤 뒤집어 진 채 절며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 차에 타라고 해도 부글거리는 게거품을 물고서 끝까지 가겠다고 우겼다. 저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나 싶어 속이 조마조마 했다. 목적지에 간신히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 쭉 뻗은 녀석에게 물을 먹이고 쵸콜렛을 먹였다. 그렇게 좀 누워 있더니 정신이 돌아오는지 씩~ 웃었다. 
마지막으로 산 정상을 향해 손바닥과 발바닥을 땅에 대고 네발로 기어 올라가게 했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녀석들도 이쯤에선 체력이 바닥이 나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나도 하루 종일 물과 훈련장비가 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따라 다녔더니 지칠 대로 지쳤다. 내가 제일 앞서 걸어서 올라가고 다음은 네이든, 그리고 폴이 기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멀찍이 뒤쳐져 비실비실 기어오르던 폴이 난데없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뛰어오르더니 내 옆을 통과 해 지나쳤다. “뭐야? 왜 그래?” 폴이 짧게 소릴 질렀다. “땅벌!” 그 소리에 셋이서 뒤도 안돌아보고 쏜살같이 산비탈을 수직으로 뛰어 올라 산등성을 넘어갔다. 한참을 달려서야 따라 오는 벌떼가 없음을 확인하고 셋이 한 무더기로 꼬꾸라졌다. 미국 땅벌은 정말 독해서 한 방만 쏘여도 치명적이다. 가끔 땅벌에 쏘인 사람이 죽었다는 지역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폴이 기어오르다 뭔가 손에 툭 걸리길래 봤더니 땅벌 집에 붙은 수많은 벌들이 일제히 자기를 노려보더라고 했다. 순간 그냥 살아야겠단 생각에 죽도록 뛰었다고. 정신력은 체력의 한계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체험한 것이다.
폴이 숨을 헐떡이며 ‘고수는 이럴 경우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이런 황당한! “얌마, 고수는 벌집 안 건드려!” ‘역시~!’ 하는 그 눈빛. 그쯤 되니 나도 힘들어 죽을 판이었다. 온종일 이 무슨 고생인가. 훈련을 마치고 하루 종일 끌고 다녔던 통나무를 계곡을 향해 던져 버리라고 했다. 그걸 던져 버리고는 얼마나 속 시원해 하던지. 먼지투성이에 거지꼴로 트럭 뒤에 실려 인적 있는 마을로 내려오니 세상이 너무 달라 보인다고 했다. 마치 오랫동안 어딘가를 다녀온 느낌이라고 했다.
다음 수업시간에 둘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발표하라고 했더니 웃통을 벗고 등에 난 생채기들이며 몸에 든 멍들을 보여주며 침 튀기는 설명을 했다. 듣는 수련생들이 입을 딱 벌리고 감탄을 했다. 곁에서 들으니 과장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내가 들어도 전설 같은 산중 수련을 받고 온 것 같긴 했다. 다른 수련생들은 산중수련이라는 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라고 놀랐다. 듣는 이들의 상상이 가미되어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이 날의 경험은 그 뒤로 지금까지 우리도장 블랙벨트들에게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 후 매년 혹한기, 혹서기를 골라 하루 일정으로 야외수련을 한다. 이것은 오직 블랙벨트만이 참석 할 수 있는 우리 도장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겨울 야외수련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며칠 째 몰아친 한파로 웅덩이들마다 물이 얼었다. 하지만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숲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참 열을 내니 추위가 가셔버렸다. 하지만 겨울 야외수련의 백미(白眉)는 마지막 얼음물 입수! 물론 자원자에 한에서만 행해진다. 물가에 모닥불을 크게 지펴놓고 내가 먼저 웃통을 벗어 젓치고 물속에 뛰어 들면 뒤이어 한 명씩 따라 들어와야 한다. 얼음물 입수 전 잔뜩 긴장하고 있는 블랙벨트들에게 조금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기 위해 얼음이 쫙 얼어붙은 웅덩이에 주먹만한 돌을 던졌다. 얼음이 퐁하고 깨지면서 수정 같은 얼음물이 팍 쏟아 오른다면 얼마나 간담이 서늘하겠는가! 하지만 잘 보라며 돌을 던지고 나서 간담이 서늘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진 돌이 얼음을 깨지 못하고 얼음 위에 그냥 팍하고 박히고 말았다.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아~! 오늘은 정말 살 떨리는 날이 되겠구나!’
때늦은 후회를 뒤로 한 채 할 수 없이 터프하게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머리까지 푹 담그고 잠수를 했다. 온 피부가 다 깎여 나가는 느낌. 한참을 버티다 온 몸에 힘을 다 주고 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다음 자원자!’ 물 밖에서 한참을 주저하다가 뛰어들고는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가는 자원자들이 하나씩 다 들어오고 나간 후까지 버텼다. 마침내 물 밖으로 나가려니 발과 다리가 얼어 감각이 없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도 온 몸에 힘주고 웃으며 버티려니 얼굴까지 굳어 말도 안 나왔다. 속으로만 ‘떨면 가짜 된다. 조금만 참자!’며 버틴 것이다. 정신이 몸을 주장한다고 늘 떠들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몸이 정신을 주장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 같다. 몸이 약해지면 정신력도 따라서 약해지니 말이다. 
하루의 야외 수련이 고생스럽긴 하지만 끝나고 나면 참가자 전원에게 언제나 보람 있고 이야기꺼리 풍성한 특별수련이 된다. 지나고 보면 항상 고생스럽던 기억만이 아름답게 남는 법인가보다. 그래서 우리 도장 블랙벨트들에게 추억 만들기로 최고의 행사가 야외수련이다. 

나는 롹(ROK)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학부모들 중에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자기도 한국에서 복무했다며 의정부, 평택, 판문점, 부산 등을 아냐고 한다. 그리곤 너도 롹(ROK)이었냐고 물었다. 롹?(Rock:돌멩이?)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다.
육군은 ROKA(Republic of Korea Army), 해병대는 ROKMC(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로 줄여서 쓴다. 그래선지 한국군을 ROK(롹)이라고 불렀다. 국군의 날이면 빠지지 않는 태권도 시범을 보면 전투화 신고 날아 차는 발차기며 대검을 든 상대를 맨손으로  해치우는 격투 시범, 온몸을 날려 머리로 받아 깨는 기왓장 등은 미군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살기가 팍팍 튀는 눈이며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간담이 서늘한 기합소리에 칼 같이 맞아떨어지는 단체 연무는 저게 전투 기계들이지 도저히 인간의 집단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첨단장비로 무장한 미군들인데도 태권도만큼은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도 한국군(ROK) 출신이고 태권도 교관이었다라고 하면 다른 학부모들에게 그렇다면 더 이상 실력은 물어볼 필요 없는 사범이라고 증언을 해 주었다.
나에겐 군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을 때의 추억이 남달리 많이 있다. 그 중 하나. 태권도 시간에 느닷없이 늘씬한 헬기 한 대가 연병장 한복판에 착륙을 했다. 엄청난 모래 바람이 날렸다. 그 정도 헬기면 군단장의 기습방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대장님도 연병장으로 뛰어 나오시며 “전체 차렷!”을 외쳤다. 전 부대원이 도복만 입고 모래를 다 집어 쓰면서 부동자세로 잔뜩 긴장해 섰다. 하지만 정작 내린 것은 미군부대에 교환 장교로 다녀오는 우리부대 소대장 하나와 같이 온 미군 소위하나였다. 돌아가는 길에 지프차 대신 타고 가라며 헬기를 내줬단다. 기가 막혔다. 군사력의 차이가 실감 났다. 이후 교환 장교로 방문한 그 미군 소위가 우리 부대 작전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자기에게 일개 분대를 주면 한국군 일개 소대를 전멸시키겠다고 했단다. 그 만큼 장비의 차이에서 오는 한국군의 전투력을 낮게 본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 미군 소위가 태권도는 신기했는지 시간만 나면 태권도를 보러왔었다. 그러던 중 그가 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시합훈련 도중 내가 찬 뒤후려차기에 맞고 상대병사가 기절했다. 턱뼈가 부러지면서 귀 통로를 뚫고 올라왔고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차에 실려 갔다. (발차기 한방에 실려 간 그 병사는 그 후 석 달이 넘도록 국군 수도통합 병원에 입원했다.) 나중에 통역장교와 함께 그 미군 소위와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오~ 태권도!” 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서 통역을 부탁했다. ‘내게 일개 분대만 주면 미군 일개소대를 박살내 주겠다.’고.           
아버지도 월남전 때 헌병대에서 복무하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었는데 술집에서 군인들끼리 싸움이 나면 미군 헌병대가 와서 싸움을 말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공포로 허공에 총을 쏴도 이미 개판이 된 싸움이 멈추질 않았다고 한다. 총소리야 신물 나게 듣는 전쟁터의 군인들 아닌가. 그 딴 협박엔 눈 하나 깜박 안했단다. 대신에 ‘한국 헌병 떴다!’ 하면 다들 ‘태권도, 태권도!’ 하면서 도망부터 쳤다고 했다. 잘못 걸리면 체포과정에서 뼈도 못 추릴 일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국 헌병들은 태권도 유단자들 중에 실력자들을 선별해 뽑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오니 도리어 군대 갔다 온 것이 한국에서 보다 더욱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난 당당히 말한다. 나는 ROK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