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새끼는 없다
수업 중에 병적으로 날뛰는 아이들이 있는데 한국에서 보던 것이랑 차원이 틀렸다. 힘을 주체를 못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학교에서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집중력 결함에 과다활동 장애) 진단을 받으면 선생님 앞에서 진정제를 받아먹어야 수업에 들여보낸다. 부모들은 건강에 해롭다고 싫어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대로 두면 다른 이들까지 수업을 못 할 정도라 그렇다. 너무 날뛰어 장애아로 구분된다. 따로 정신과 상담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아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도장을 찾아온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으면 상담하는 의사가 우리 도장에 애들 보내니까 나아지더라고 보내서 왔단다. 처음엔 겁이 났다. ‘왜 다들 내게 문제아들만 데려오나? 그럼 도장 꼴이 뭐가 될까.’ 하지만 좀 지나고 나니 나름 자신이 생겼다. 그 말 안 듣고 날뛴다던 녀석들도 태권도 수업에 들어와선 별 문제가 없었다. 도리어 시키는 대로 신나게 잘만 따라했다. 내가 부모에게 ‘얘가 뭐가 문제인데요?’ 하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들도 신기해했다. 선생님 말, 부모 말은 죽도록 안 듣는 녀석들이 도장서 사범님 말은 듣네?
난 수업시간에 아이들보다 더 날뛰는 편이다. 내가 소리도 지르고 기합도 넣어가며 추임새를 넣어야 말이 잘 안 통하는 분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뛰는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한마디로 기가 세다. 그 센 기운이 주체가 안돼서 날뛰게 된다. 아이보다 기가 약한 선생님이 타일러도 보고 윽박도 질러 보지만 안 먹힌다. 미국에선 체벌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어 아이를 팰 수도 기합을 줄 수도 없으니 이 녀석들이 약점을 악용해 대들기 일 수다. 나이가 찰수록 점점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간다. 학교의 룰은 다 깨고 다닌다. 그래서 자꾸 약을 먹여 주저 앉히려드니 약기운 떨어지면 더 날뛸 수밖에.
그런데 도장에 오면 “더 빨리 뛰어, 더 소리 질러, 더 세게 차!” 학교와 집에서 못하게 하는 일을 도장서는 더 하란다. 이런 훈련방식을 통해서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시켜 주고 막힌 기운을 풀어주고 나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게다가 사범이란 사람은 벽돌이고 야구배트고 손발에 닿는 대로 다 부숴버린다. 목소리에도 힘과 권위가 묻어난다. 자기가 알던 다른 어른들과는 눈빛부터 틀리다. 아이들이 사범의 기운에 꺾여 ‘아, 사범님한테는 안 되겠구나.’하고 기가 죽고 나면 이끄는 대로 그럭저럭 잘 따라온다.
학교와 달리 말 안 듣는 녀석들의 투정도 안 통한다. 까불다 걸리면 수업 후에 무릎 딱 꿇고 마주 앉아 상담을 한다. 눈을 딱 마주보며 묻는다. 내가 누구냐? 사범님이다. 여기가 어디냐? 도장이다. 여기 왜 왔냐? 태권도 배우러. 태권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범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답은 쉽다. 그래? 잘 아네. 여긴 학교가 아니고 난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애 봐주는 보모는 더더욱 아니다. 도장에선 내가 대장이고 법이다. 규칙을 따르던지 쫓겨나던지 둘 중 하나다. 말 안 듣던 녀석들이 벌써 여러 명 쫓겨났는데 이번엔 네 차례인가 보다 마지막 기회다. 한 번 더 까불면 넌 잘리는 거다. 네가 선택해라. 쫓겨나든지 남든지. 단호하게 말해준다. 기가 팍 꺾인다. 부모나 학교 선생님처럼 만만한 존재가 아니란 걸 다시 느낀다.
태권도 시간은 재미있다. 뛰고 기합을 질러도 되고 도리어 잘한다고 칭찬까지 들으니 재밌기 그지없다. 그런 곳에서 제 발로 쫓겨나는 것은 불명예다. 학교에선 선생님들의 말뿐인 위협이지만 사범님은 정말 그렇게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잘 해 보겠다고 제 입으로 약속을 한다. 그러면 보내준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나? 몇 번을 그렇게 또 불려오고 무릎 꿇는다. 그러고 나면 점점 도장의 규율을 따르게 된다.
막 까불다가도 멀찍이서 사범과 눈 한 번 딱 마주치면 짧은 시간에 대화가 오간다. 말이 필요 없다. ‘너, 쫓겨날래?’ ‘아뇨, 잘 할게요!’ 거의 텔레파시 수준이다.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딱 잡힌다. 그게 점차 익숙해 지다보면 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고 나면 학교에서도 자신을 절제하고 룰을 따르는 통제력이 생긴다. 또 심사 전에 부모님과 선생님 앞으로 학교와 집에서의 생활 태도를 묻는 설문지를 보낸다. 점수가 나쁘면 심사불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퇴출 우선순위명단에 오른다. 그저 칭찬을 듣던 꾸중을 듣던 자신의 선택임을 알려준다. 
야단으로만 아이들을 주저앉히려는 부모와 그럴 수 없는 아이들 사이엔 전쟁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사실 아무 잘못도 없다. 호르몬 균형이 깨져서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 짐작엔 부모 세대부터 함부로 먹어온 음식에서 가장 큰 영향이 오는 것 같다. 무엇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아이가 내게 불려와 무릎을 꿇으면 오늘 약을 안 먹어서 그렇다고 실수를 약의 탓으로 돌리려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약과 상관없는 의지의 문제이라고 한다. 도장에서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 기분이 아니라 룰을 따라가는 훈련을 하다보면 스스로 호르몬의 불균형을 이겨내는 것 같았다. 이런 훈련이 근본적인 치료라고 본다. 그래서 진정제를 먹던 녀석들이 더 이상 안 먹어도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이해가 되니 밉지도 않았다. 아무리 날뛰는 녀석이 들어와도 노란 띠를 따면 바뀌기 시작한다. 벨트에 욕심이 생긴다. 다음 벨트도 얼른 따고 싶지만 그러려면 사범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누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는지, 누가 권위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집이나 학교에서 문제를 만들면 부모나 선생님들이 ‘사범님한테 이른다.’고 협박(?)을 한다. 그러면 ‘잘 할 테니 제발 사범님한테만은 이르지 말아 달라.’며 빈다고 한다. 어려도 아이들이 다 속이 있다. 야단만 맞고 살던 녀석들을 다독거려주고 힘을 북돋아 주니 내게 잘 못 보이고 싶지 않아선지 스스로 말썽을 애써 참는 모습도 보인다. 가슴이 찡하다. 그런 모습들이 나를 감동시킨다. 
   
휠체어의 켈립(Caleb)
시범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데 휠체어 탄 아이가 와서 자기도 태권도 배울 수 있겠냐고 물었다. 11살이고 이름은 켈립(Caleb)이었다. 가족끼리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도 어떻게 받아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이런 학생을 지도해 보곤 싶었지만 일반 수업시간에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나 또한 경험이 없으니 일단 무료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르치기로 했다. 막기, 지르기 등 상체로만 할 수 있는 간단한 기술들을 가르쳐 주고 집에서 연습해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다음 시간에 점검 받고 잘하면 다음 기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부모가 맘이 아파서 해달라는 것 다 해주다 보니 버릇이 없었다. 이거 가르쳐 달라, 저것 가르쳐 달라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을 제가 정하려 들었다. 그런 버릇이 내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난 착한 녀석만 가르친다. 태권도를 배워서 착해지는 게 아니라. 착하지 않은 녀석은 아예 안 가르친다. 태권도는 내가 가르친다. 너에겐 아무 선택권이 없다. 시키는 것만 한다.’ 그랬더니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던 성급한 태도도 꺾여버렸다. 나중엔 일반 수업에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달을 수련하고 첫 심사를 보던 날 휠체어 탄 켈립이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정렬해 있으니까 다들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품새를 하는데 합류시켰다. 준비자세에서 왼쪽으로 휠체어를 돌려 막고 지르고 다시 반대로 돌려 막고 지르고 그런 식으로 발차기를 빼고 하는 품새를 마친 후 우렁찬 기합으로 마무리를 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눈에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진지함이 배어 나왔다. 발차기를 할 때도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줄을 섰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발차기 대신 주먹이나 손 또는 팔꿈치로 타겟을 치고 빙 돌아 자기 줄에 합류했다.
한번 겨루기와 호신술 심사도 잘 끝냈고 휠체어가 휘청거릴 정도로 힘을 주어 송판을 깨고 나자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심사가 끝나고 새 벨트를 매주고 악수를 하는데 어제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타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내 손을 꽉 부여잡은 아버지는 눈물이 글썽거리며 그저 고맙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사실 나 자신도 얻은 게 많았다. 이제 휠체어 탄 사람도 가르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켈립이 도장에서 밤샘하는 아이들 프로그램에 합류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화장실 사용이 걱정스러웠다. 혼자 휠체어에서 변기에 올라 일을 볼 수 있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허락을 했다. 그런데 게임을 하는데 아이들이 켈립이라고 사정 봐주지 않았다. 내심 뜨끔했다. ‘아니 불쌍하지도 않나? 좀 살살해주지.’ 하지만 그건 곧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켈립도 인정사정 안 봐주는데 만만찮은 실력이었다.
마음이 좀 놓여 잠시 켈립에게서 눈을 떼었다가 문득 생각이 미처 뒤를 돌아보곤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이 휠체어에서 켈립을 끌어내려 힘없이 늘어진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지 않은가? 너무 놀라 말리려고 하는데 땅바닥에 누운 채 끌려가는 녀석이 깔깔거리며 웃고 있고 끌고 가는 아이들도 웃는 게 못살게 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조용히 한 사내아이를 불러 물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니?” 행여 야단맞을까 싶은지 걱정스레 대답을 했다. "우리가 막 뛰고 노는데 휠체어로는 우리처럼 못 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켈립을 도와주는 거예요.”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은 정말로 가슴을 열고 켈립을 똑같은 친구로 대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켈립은 태권도를 배운 이후 다른 스포츠들에도 취미를 들여 여러 가지 스포츠에 도전했다. 지금은 매년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며 당당한 선수로 활약을 한다. 양궁에 특히 소질이 있으며 그 밖의 종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운동량이 일반인들 보다 훨씬 많다. 매 번 다른 종목의 시합에 참가하러 다니느라 일 년이 바쁘다. 필요한 경비는 여기저기서 장학금도 들어오고 마을에서 모금행사를 열어주기도 한다. 도리어 비장애인들보다 더욱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 도장에 들려 인사를 하고 가는데 볼 때마다 예전의 그 버릇없었던 아이가 아니라 건장하고 당당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태권도가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하지만 난 그런다. 태권도가 아니라 네 도전적인 자세가 너를 이런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휠체어의 제시(Jesse)
켈립 이야기를 듣고 한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이름은 제시. 나이는 열 살이지만 덩치는 고작 여섯 살짜리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나온 것이다.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 아이가 반으로 접혀 나왔다고 했다.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니까 앉은 자세 그대로 다리와 허리가 90도로 꺾여 펴지지 않은 채 손으로 기어 다녀야 했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매주 받는 물리치료 외엔 아무런 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받아 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좋은 일 한 번 하자 싶어 또 무료로 한 주에 한 번씩 오라고 했다. 시간을 쪼개어 개인교습을 시켰다.
제시는 덩치도 왜소했지만 힘이 너무 약했다. 게다가 팔도 반 밖에 안 펴지고 엄지손가락도 잘 굽혀지지 않아 무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부러 큰소리 쳐가면서 터프하게 대했다. 태권도는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닌데 너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럴 때면 생글생글 웃으며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기합을 지르며 열심히 했다. 엄마와 아이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있었다.
낯을 가려 남들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겐 곧잘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대답도 잘 했다. 하루는 다른 아이들에게 하듯 제시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웃던 낯이 금방 굳어지면서 눈물을 글썽거린 채 아무 대답도 못했다. ‘아차! 실수다!’ 어리지만 제시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태권도가 조금이라도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엄마 말이 학교(장애인 특수학교) 다녀오면 아무 것도 안 하던 아이가 요즘은 열심히 팔을 펴고 주먹을 질러보고 막는 연습도 하며 일주일 내내 태권도 시간을 기다린다고 했다. 태권도 할 땐 내가 봐도 눈이 살아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제시가 조금씩 자세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몸의 한계가 있어 제대로 된 기술을 보이긴 어렵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것이야 말로 태권도 수련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다들 심사를 보고 벨트가 올라 갈 때마다 행동이 바뀌고 자신감과 자존감(自存感)이 생긴다. 이 아이에게는 심사를 통한 자존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 켈립 때보다 상황이 어려웠다. 혼자 휠체어의 방향을 바꾸기가 어려울 정도로 팔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외는 없었다. 힘들게 이룬 일일 수록 성취감은 큰 법이다. 이리저리 휠체어 방향을 바꾸느라 한참을 낑낑대며 품새를 끝냈다. 차라리 숨죽이고 보는 사람들이 애간장이 타 더 힘이 들 정도였다. 품새가 끝나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번 겨루기며 호신술은 내가 상대 해주었다. 눈치 없는 녀석들이 대충 맞아 주는 척하고 넘어가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까봐 한 배려였다. 마지막 격파 순서. 제일 얇은 송판을 메주먹으로 내려쳐 깨야 하는데 한 번에 안됐다.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팔로 일곱, 여덟 번을 내리치는데도 안 되자 눈물이 가득 고이며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도장 한 복판에서 휠체어에 앉아 남들은 한 번에 깨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수치심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심사를 지켜보던 수련생들이나 관람객들도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도리어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범님, 이제 그만 시키지. 불쌍하지도 않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이 톡하고 건들면 팡하고 터질 것 같았다.
하던 것을 멈추게 하고 내가 물었다. “노란 띠를 따고 싶나?” 다 죽어 가는 소리로 “Yes, sir.” 한다. “그럼 방법은 하나다. 그 송판을 깨라. 난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네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시키는 거다. 대답해라. 할 수 있나?” 마지못해 대답했다. “Yes, sir......” 내가 버럭 소릴 질렀다. “소리가 작다! 할 수 있나?” 그러자 깜짝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Yes, sir!” 목소리가 커지면 십중팔구는 된다. 자신감이야말로 진정한 내면의 힘이기 때문이다. “격파!” 어금니를 깨물고 눈에 반짝 빛이 났다. 내리친 손에 송판이 깨졌다. 주위의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결국 해내고 나자 ‘이 정도야 뭐.’라는 투로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웃고 있는 제시 뒤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 뒤론 돌아가며 블랙벨트 학생들에게 제시를 지도하도록 시켰다. 서로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선배들은 태권도를 배웠으니 좋은 일에 쓸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제시를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어린이 재능선발 오디션(Kid Talent Search)에 참가시켰다. 잘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당당하게 겨뤄 보라고 시켰다. 층계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무대 위를 사람들이 휠체어에 탄 채 들어 올려주자 평범하지 않은 등장부터 눈길을 끌었고 다 펴지지도 않는 팔로 품새, 호신술과 격파에 이어 쌍절곤 시범까지 보였다. 단연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장면이 그 날 최고의 장면으로 찍혀 지역 신문에 실려 한동안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덕분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엄마가 어찌나 그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진정한 재능은 타고 나는 재주보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사범으로서 태권도를 통해 자신감 넘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그 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 없다. 태권도. 그것은 내 인생뿐만 아니라 나를 만난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준 좋은 친구다. 난 항상 말한다. 난 도장에서 태권도를 파는 게 아니라 자신감을 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