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싶었던 날에 느닷없이 여름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나무와 꽃들은 황급하게 꽃과 잎을 함께 내 보냈고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꽃가루에 알러지가 유난히 많이 나타납니다.   비가 두어번 지나가며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그리고는 늦가을이나 초겨울 날씨로 다시 돌아앉은 이곳 메사추세츠.   학생들은 모두 여름방학을 했는데 내 옷걸이에는 반바지, 긴바지, 잠바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내복까지 챙겨 입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 교회의 집사님 중 한명은 심장 수술 후의 후유증으로 잠깐 졸도하여 온 가족과 교회식구를 들었다 놨다 했고 또 한 집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을 담고 있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구안와사가 찾아왔습니다.   네팔에 보내는 음식을 포장하는 봉사를 하던 지난 토요일 난 머리가 뽀개질 듯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좀처럼 머리가 아프지 않던 나로서는 몹시 힘들었습니다.   내가 멀리 보스톤으로 나가 봉사하던 그 시간 교회의 두 집사는 둘 다 그런 고통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두 집사가 없는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내내 눈물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내 두통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지속 되다가 약을 먹고 간 월요일 성경공부 시간에는 거의 졸 뻔 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결속 되어 있다라고 난 생각합니다.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대단한 예수쟁이인 듯싶습니다.    이곳의 생활은 교인 아니면 교류가 없고 교회를 통하여 사회 생활의 발판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생계를 위한 노동만이 남습니다.   이민 교회도 여러 분위기로 나뉘곤 합니다. 이곳에도 네 개의 한인 교회가 있습니다.
노인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 학생들이 다니는 교회, 사회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다니는 교회, 불쌍한 사람만 다니는 교회.   그 중 우리 교회는 불쌍한 사람만 다니는 교회입니다.  네 교회가 하나로 합쳐지만 참으로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되겠으나 한국민의 유별난 민족성은 나뉨의 은혜를 받았는 모양입니다.   나뉜 상태에서도 다 제 갈 길을 잘 가면 나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 합니다.   불쌍한 사람만 다니는 착한 우리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 보면 눈물 없이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난 우리교회 성도들이 습관, 갖고 태어난 속성, 어쩔수 없는 혈기, 과일속의 심처럼 교묘하게 숨어 있는 자존감 등등등.   자신을 늘 옭죄어 사랑과 결속을 방해하는 그 숱한 감정의 고인 물이 바람이 세게 불어 서로 섞이고, 서로 정화 시키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삶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어 영혼의 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바람의 기운.   그것이 곧 성령님이라 느끼고 느낍니다.   초여름날, 다락방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을 마주하는 날은 나를 가장 기쁘게 합니다.  훗날에는 이 우울함까지도 하나님에게 귀속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쓴 시를 여기 붙입니다.    지금은 늘 바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우울함까지는 챙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돌보아야 할 실생활이 너무 많으니까요.    나의 유배된 우울까지도 건져올려 주실 것으로 믿고 난 앨리스처럼 시계를 안고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유배된 우울

너를 만나러 가는 날
취꽃이 뽀얗게 마을 어귀를 적신 날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선한 남자의 눈을 봐 버린 날
낮잠에서 깨어난 후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는 날
엄마가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게 기적 같은 날
괘종 소리에 난초 잎이 흔들리는 날
배부른 새댁에게 들뜬 목소리만 가득한 날

네가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나를 내어준다
우울이여 그동안 수고했다
이름에서 풍겨오는 눈물 냄새

이생은 내가 할 일이 많아 수고로움이 가득하다
이 수고로움이 끝나는 날
맑은 눈을 가진 너와 먼 곳으로 도망가서
고통에 실컷 취할 계획인데
너 함께 가겠는지

[엄마의 연애 –푸른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