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 나는 저 시계가 좀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어요.   또 어떤 때는 천천히 갔으면 하고 생각해요.   하지만 시계는 내 말을 들어주는 법이 없어요. 늘 같은 속도로 가지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에 나오는 안네 프랑크의 말입니다.  시간은 어쩌면 늘 같은 속도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빨리 가고 또 늦게 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시간은 누구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속도를 달리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 주지도 않구요.  오늘은 느닷없이 서랍장의 다섯 번 째 칸을 정리했습니다.   서랍 안에는 수 십 년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 아들의 배냇저고리, 딸아이가 다섯 달 되었을 때 처음 자른 머리카락,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쓴 종합장 등등 아주 많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 수북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습니다.   판소리 가사를 적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스물 두어 살 즈음 라디오 심야 방송에서 가야금 산조를 듣고는 국악에 빠져 미친 듯 배우러 다녔던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평론하시는 선생님이 “판소리는 혼을 빼앗아 가니 시를 쓰려거든 판소리를 배우지 마시게”라고 하셨지만 판소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미친 듯 달려 나갔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문화재 되시는 한 분이 신문에 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아 소리를 가르치겠다는 광고를 냈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고는 망설일 것 없이 등록을 했지요. 처음 배우는 날 들뜬 마음으로 낙원동의 어느 허름한 집의 옥탑방을 찾아 갔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왔었지요.   수십은 족히 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한 달도 안 되어 반이 떠나가고 두 달 째 반이 떠나더니 넉 달 째 되던 즈음에는 저 혼자 남아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저 하나를 보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계속 소리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런 말씀이나 하시지 말지 전 또 수소문 하여 국립국악원에서 그 비슷한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어둑한 저녁 국립국악원을 오를 때 맞바람을 맞으며 조금 허리를 구부리고 걸으면서 소리를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판소리에 빠지면 다른 노래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허나 그 강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더 이상 유지 할 수 없는 강좌가 되어 버렸지요.   난 판소리 배우는 것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배우던 판소리의 가사가 적힌 종이들을 착착 모아 두었는데 오늘 그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것을 이제껏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 두었던 것입니다.   이제 난 찬양도 좋아하고, 랩도 좋아하고, 롹도 좋아하고, 발라드도 좋아합니다.   보편적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 시절의 나는 너무 뜨거워서 자신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아니 망가져도 좋다는 마음으로 한가지를 좇아 가던 아름다운 부나방 같았습니다.    돈이 없었던 시절의 열망은 훅 타올랐다가 돈 때문에 맥없이 꺼져 버리기를 반복 했습니다.   돈 하고는 영 인연이 없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포기 할 수밖에 없는 탓을 만들어 어딘가에 모아 두기 시작 했던 것이지요.  햇빛이나 달빛 그리고 불빛 들은 다 따뜻하지만 그닥 빛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봄날의 너무 밝은 햇빛이 제일 나를 괴롭히던 것 이었습니다.   환한 빛 가운데 서 있으면 다른 목숨으로 살던 전생과 이생 그리고 다음 생의 부스러기들이 빛 속에서 막 날아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는 나에게 내재된 이유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우울이라고 하지요.
난 이제 젊은 날의 열정에서는 조금 비켜 선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난 사람의 감정 변화에 그닥 매력을 못 느끼지만 그 변화와 열정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 인지는 알지요.   그 시간에 느끼는 고통의 색깔이 얼마나 화려한 것인지 그 때는 잘 모릅니다.    내 젊은 날의 화려한 절망, 이젠 기억조차 희미한 절망의 찌거기를 버리고 가요를 크게 틀어 놓고 따라 불렀습니다.

     그래도 “사철가”와 춘향가 중 “쑥대머리” 그리고 그 외 몇개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계속 갖고 있을 참입니다.    참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사철가의 가사를 찬찬히 읽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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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가]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 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가있느냐?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꽃피지 않은 황국 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 되고 보면, 
월백설백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인간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지허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 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생전일배주만도 못하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쩔그나. 
늘어진 계수나무 끌끌어리다가 대랑 매달아놓고 국곡투식허는 놈과 

부모불효허는 놈과 형제 화목 못하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어서 “한잔 더 먹소들 먹게”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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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를 두어 잔 마시며 사철가를 부를 때는 완전히 청승맞은 아가씨였습니다.   지금 읽으니 전도서 1장의 말씀이 노래 곳곳에 스며 있었군요.   실체란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실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당신 옆에 서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들인데 이제서야 아름답다고 느끼는군요.   그 시절의 나는 직장이 있었고 건강했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그 당시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 때문에 느꼈던 쓴 맛도 훗날 이렇게 아슴한 그리움으로 무성 무성 자라납니다.  지나온 어둠까지도 시간이 흐르는 섭리 안에 두면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되면서 따뜻하니까요.   난 아직도 외롭고 슬픈 고질병에서 놓여나지 못했지만 따뜻한 햇살 아래로 내 영혼을 옮기셨으니 이제 햇살 속에서 자연스럽게 늙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지금 아픈 이들을 향해서 아픈 시기를 벗어난 이들은 입 꾹 다물고 그들이 잘 지나 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 서 줄 일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로 이 나이가 되었다면 매년 찾아 오는 혼란한 계절이 변화되는 빛을 어찌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그 혼란의 시기를 치르고 있는 이를 만나면 잠시 등으로 받쳐 주는 것뿐 입니다.   환한 곳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캄캄한 마음은 그저 늘 내 안에 상주해 있는 또 다른 나 입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이래도 저래도 다 생은 아름답지만 말이지요.   사람들이 추운 강가를 오래 걷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