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 이년 전의 일이군요.  영어를 못하는 겨우 네 살 난 딸아이가 처음 학교에 갈 때 난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란 한마디의 말만 가르쳐서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인데 딸아이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말하기 좋아하는 딸아이는 몇 개의 단어를 마구 섞어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문제는 자신은 불편하지 않았어도 듣는 미국 선생과 친구들은 얼마나 많이 불편했겠어요.   학교 다닌 지 일년 반쯤 지난 무렵, 아이를 통해서 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새삼 알게 된 날이 있었는데요.  나의 안면 근육 떨림증은 나는 괜찮은데 내 몸이 편치 않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지요.   이민을 준비하면서부터 생겼는데 괜찮다가도 마음에 무언가 꽉 차면 다시 떨리곤 했었지요.  한동안 조용하던 눈 밑의 근육이 떨릴 때 아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마음속에 슬픈 일 있어? 그런 것은 사람들과 이야기로 풀어야 한대.”

   여섯 살짜리 계집애가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할 때 많이 놀랐는데 아이에게 있었던 일을 예로 들었을 때에는 눈물 나게 애잔했습니다.

   “엄마 1학년 처음 들어 갔을 때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친구들이 나하고 놀아주지를 않았어.  난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친구가 없으니까 많이 힘들었어.  내가 용기를 내서 선생님한테 이야기 했어.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어요? 도와주세요” 

   아이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했지만 그때 아이는 말을 못했으니 말을 했다기 보다 선생님이 아이의 눈빛을 이해했을 겁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어린이 상이라는 노란표를 아이들 앞에서 윤정이에게 주었다고 해요.  그 뒤로 아이들이 윤정이에게 말도 시키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네요.  내 눈 떨림 현상을 본 딸아이가 내게 해 준 말이에요.   제 딴엔 비밀 이였으니 몇 개월 동안 감추어 두었겠지요.

   나도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정말 말하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정말 그랬을까요?   생각해 보니 난 속엣말은 사람들과 하지 않고 지낸 것 같아요.   어쩌면 문제 해결 방식을 좋아질 때까지 참는 것.   참지 않고 화를 내면 훗날 좋아질 마음 속의 여건을 다 망가뜨릴 것 같은 불안으로 늘 입을 다물고 이성적으로 준비가 되었을 때가 돼서야 조근조근 말하는 그 버릇 말이에요.   난 그게 나도 상대도 다치지 않는 것 인줄 알았는데요.  그거 완전히 사람을 돌게 하는 습관 이었던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어요.   적당히 화내고, 적당히 화해하고, 적당한 빈자리를 기꺼이 보여주는 것이 나도 상대도 편하게 하는 것 인줄 몰랐던 거예요.   그 버릇 고쳐 보려고 했지만 늘 하던 대로 입을 꾹 다물게 되었어요.   그 해결 방법, 상대도 나도 다 돌게 만드는 그 쇠귀신 같은 방법 이젠 정말 버려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못해도 아이에게 늘 긍정적인 해결 방식을 이야기 하며 키웠더니 그 말이 아이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품은 거예요.   내 강팍한 마음에도 그 씨앗이 다시 날아드는 거예요.   마치 부메랑처럼 내가 한 말을 아이 입을 통해서 다시 듣는 거예요.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나도 겪는 모든 일이 처음이기 때문에 적당히 꾸미고 덧입혀 말하는 것임을 아이들도 알까요?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이 나를 키우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시간.   감사 드리지 않으면 나는 정말 도둑년이에요.   

   잠언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 비추어 보니, 40살에 과부 된 엄마가 나를 키운 방법은 억척으로 살아내는 생활력을 보여 주는 것 이였구요.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난 엄마에게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된지를 배웠고 그 노동은 경건하기 조차 하다는 것을 배웠다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의논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랐기를 바랍니다.   단 한 세대의 일인데도 우린 늙거나 어리다는 것을 내세우고 엄마의 삶, 딸의 역할로 나누지만 말이예요.  당신 앞에 서면 엄마나 아이나 다 아이잖아요.    당신께서 주신 아이들과 보내는 짧은 한 평생 잘 살아 낼게요.  우리 엄마도 아마 나하고 비슷한 기도를 하고 계실 거예요.  늙은 엄마는 요즘 자주 아프고 마음도 약해 지셨지요.   엄마가 말합니다.

   “희주야 기도도 건강해야 한다.   너무 많이 늙으니 기도를 할 수가 없구나.”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갑니다.   몸과 마음이 늙으니 정신을 집중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엄마의 기도는 이제 아프지 말고 빨리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잘 걷지 못하는 중에 운동 하신다고 나오셔서 몇 걸음 놓다가 쉬기를 반복하다 내 전화를 받으십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지금이 엄마 건강의 최상이야.   남은 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야.   처음 병원에 누워 똥, 오줌도 남의 손을 빌려야 했던 것을 생각해봐.’     난 이 말을 엄마에게 하지 못합니다.   엄마는 그 모두를 다 알지만 곧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 올 것이라는 것에 대한 준비를 다 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 준비가 다 끝나면 엄마는 지금의 우울에서 환하게 웃으며 지금의 건강을 감사하면서 평안을 찾을실 것입니다.    건강을 다시 회복하셔서 맘껏 다니고 싶은 곳을 다니시고 드시고 싶은 것을 드시면서 좀 더 자식들 옆에 있으시면서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찬찬히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이 길면 길수록 좋겠습니다.    엄마의 막내딸인 나는 폐경이 되었고 잠 잘 때는 온 몸이 쑤셔서 수시로 잠을 깹니다.    엄마가 저물면 자식들도 자신들이 몸을 한껏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자연스럽게 늙는 것으로 생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엄마는 축복받은 생을 살았습니다.    이제 생이 저물어 가는 허무에서 벗어나 가장 젊은 하루 중에 일분 일초도 두려움에 잡히지 않고 평안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꼬맹이 내 딸은 나와 엄마의 대화를 늘 듣고 자라서 그런지 어떤 때는 내가 한 말을 아이가 합니다. 보고 들은 대로 크는 중입니다. 부디 밝고 건강한 부분이 어둡고 습한 마음보다 아주 많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내가 기도를 할 수 없는 순간까지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여섯 살 때 기억을 더듬어 쓴 시 한편 여벌로 글 뒤에 붙입니다.

                [삼양동 집 우물]

여섯 살쯤 되었을 때/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는데요/ 두레박이 떨어지며 내는 풍덩 소리가 좋아서/ 줄을 차르륵 풀어 넣곤 했는데요/ 힘이 없어 물은 다 떨어지고 빈 두레박만 건져 올렸는데요/ 떨어지는 물소리가 심심한 오후를 흔들어 주었는데요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듣고 계시구요

우물 속에 뭔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두레박이 내는 소리 말고 또 다른 소리가 있었는데요/ 나는 그것이 물고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등 푸른 물고기가 우물에 갇혀/ 은백색 배를 캄캄한 바닥에 대고/ 검은 반점이 눈알에 생기도록 바다를 그리워하다가... 까지 생각하다가/ 우물 속에서 죽었을 물고기 때문에 눈물이 났는데요

어느 연속극에서 우물 속에 물고기가 있다면 
밖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거란 대사가 나왔는데요

그 말에/ 내 안에 고인 어둠이 한 번에 가셨는데요/ 집 근처에는 개울도 강도 바다도 없는 산꼭대기였는데요/ 그래도 내 눈엔/ 환한 바다가 보이는데요

[엄마의 연애 –푸른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