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흔한 뉴잉글랜드, 올 겨울에 눈다운 눈이 오지 않더니 드디어 내렸습니다. 이번 눈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내려 생활에 큰 불편을 끼치지 않은 채 백설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한 해 전의 기록적인 폭설로 눈이 무섭기도 할 터이나, 그래도 겨울이면 눈을 기다리게 됩니다. 겨울마다 눈이 내리되 이렇게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문이 닫히고 아이들이 공으로 노는 날이 하루쯤은 있게 하시고, 두 세 번은 요렇게 적당히 내려줘서 겁내지 않고 바깥출입을 하면서 내리는 눈을 감상할 수 있게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적설량을 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눈을 좋아합니다. 아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면 눈이든 비든 다 좋아합니다. 황량하고 추운 겨울에 눈마저 없다면 겨울은 더욱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될 것입니다. 눈은 삭막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사람의 마음에 훈훈함과 밝음을 주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눈은 얼어붙은 빗물이지만 빗물만큼 차지 않아 좋습니다. 또 빗물처럼 얼굴을 때리지 않아서 좋습니다. 눈은 소리 없이 내립니다. 눈은 부드럽게 내립니다. 그가 내 얼굴에 살며시 와 닿으면, 이내 따뜻한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눈 오는 날이면 나는 시인이 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아름다운 형용으로 눈을 노래했을 터이니 아무도 표현해 본적이 없는 시적 언어로 요정같이 춤추며 내리는 눈과 찬란한 설경을 새롭게 노래하기에는 나의 시심이 너무나 얄팍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하여 눈 오는 날 자연스레 마음에 떠오르고 입가에 흐르는 노래는 나보다 먼저 눈 위를 걸으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옛 시인들의 것입니다. 초등학교 음악책에 실린 동요가 쉽게 떠오릅니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또 한 노래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전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내 머리 쓰다듬어주시던 할매
바깥은 연신 눈이 내리고
오늘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밝으며 간다.(김용호 “눈 오는 밤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아득히 먼, 눈 덮인 산골을 찾아갑니다. 우리 할매 홀로 사시던 ‘고랑골’ 마을은 눈이 많이 내리면 겨울 내내 읍내와 교통이 두절 되는 곳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서면 밤사이 몰래 지나간 짐승 발자국이 가지런히 나 있곤 했습니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면 짐승들도 똑바르게 걸을 줄 아는 동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내가 눈 위를 걸으며 남길 수 있는 발자국보다 더 반듯한 발자국이 싫어서 발로 어지럽게 문질러 버리고, 그리고 나선 눈 위에 서서 밤새 참았던 ‘쉬’를 하며 기분 나쁜 발자국들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습니다.         
   
   몇 해 전 여름, 지금은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우리 할매 집, 좁은-그때는 아주 크게 보였었는데-마당에 섰을 때, 오줌으로 노랗게 물들었던 그 자리에 잡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배운 한시(漢詩) 한 수가 이제야 생각나서 드늦게 나를 훈계합니다.

踏雪野中去(답설거중거)
눈 덮인 들판 밝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그 발걸음 어지러히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은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터이니.

  원래 이 한시는 서산 대사가 쓴 선시(禪詩-수련할 때 묵상하는 시)인데, 훗날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인용하고 붓글씨로도 남김으로써 유명해진 시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이나 오줌 자국은 눈이 녹으면 사라질 것이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남긴 삶의 족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하늘의 상급을 위한 최종 심사대에 오를 것입니다. 바둑이와 같이 간,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예쁜 발자국이 어느 시인의 시심을 자극하여 아름다운 동요를 만들어냈듯이, 눈 덮인 산사(山寺)에서 수련에 정진하며 남긴 서산 대사의 시 한 수가 청년 김구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애국애족의 길을 걷게 했듯이, 오늘 여기 우리가 남기는 말 한마디나 작은 몸짓 하나가 어쩌면 우리 자손들에게 위대한 꿈을 심어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는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지도 모릅니다. 눈 위를 걸을 때마다 내가 남긴 발자취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음 생각하면 걸음걸이가 한층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