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주도를 다녀 왔습니다. 대학 졸업 기념 여행을 다녀온 후 50여 년 만에 가 본 올 봄의 제주도는 유채꽃과 벚꽃의 향연이 한창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7대 명소 중 하나답게 그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얕은 돌담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노란 유채꽃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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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과 달리 본토나 섬이나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남정네들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고 집에 남은 여인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그 수 많은 돌들을 캐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 까? 생존을 위해 여인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돌담이 이제는 제주의 유명 관광 자원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봅니다.

   요즈음 “제주도”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노란 “유채꽃”과 “올레 길”을 떠 올리게 되지만 제주도는 이조 500여년 동안 2000여명의 죄인이 유배를 갔던 천형의 “流配地” 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추사 김정희 선생!  9년동안의 유배 생활 중에도 자기 성숙과 학문적 완성을 이루어 낸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는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애는 혹독한 고독의 정진 속에서 이룩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옵니다. 김정희 선생과 茶僧 초의 선사가 차를 나누어 마시던 정신이 제주도 茶 문화를 잉태하였다는 의미에서 추사를 기념하는 “인연의 올레 길”은 “오설록”이라는 茶 농원과 茶 박물관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혹독한 유배 생활 중에 은밀한 차 마시기가 이제는 밝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오설록’으로 재 탄생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저 유명한 “歲寒圖” 역시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기간 중에 귀한 책들을 보급하여 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준 것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아름다운 信義와 함께 세기의 명화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의 혹독한 겨울 바람에 앙상한 소나무 한 구루와 두 그루의 잣 나무 그리고 소박한 초가 한 채가 전부인 “세한도’는 모진 제주도의 기상 조건과 오랜 유배 생활로 삭막해진 선생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워 진 뒤에야 소 나무 잣 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추사의 名文이 쓰여져 있어 그 가치가 더 높아진 歲寒圖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 건축가 송효상의 설계로 지어진 추사 기념관도 볼만합니다.

   제주도에 가면 심신의 虛氣를 싱싱한 해산물로 채울 수도 있지만, 추사 기념관을 중심으로 한  “인연의 길” “집념의 길” “사색의 길”을 걸으며 先人들의 발자취를 되삭여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동안 어찌 편안하기만 하겠는가?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고비에는 그 나름의 하늘의 뜻이 있겠거늘, 추사 김정희 선생님께 가혹한 위리 안치(가시 담장)의 유배 시절이 있었기에 글씨의 최고 경지로 평가되는 “추사체”를 이룰 수 있었으며 “歲寒圖”와 같은 古今의 명화를 남길 수 있지 않았겠는가!
    
   실학자 정약용 역시 천주교 사화로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익히고 정진한 학문으로 목민심서 등 다수의 도서를 저술하였으며, 이조 말기 대원군이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최익현(1833- 1906)도 유배가 끝난 뒤 한라산을 등반하고 “유 한라산기”라는 명저를 남기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혹 삶의 고초를 겪게 되더라도 슬픔과 좌절로 보내기 보다는 고난을 발전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여야겠습니다.   

   제주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제주 특유의 경치는커녕 길가에 늘어선 수 많은 건재 철물상점과 개발 공사라는 이름의 복덕방(?) 덕으로 생겨진 듯 다른 도시와 다름없는 현대식 건물에서 실망했던 저는 마지막 행선지로 선택한 “제주 민속촌”에 가서야 조금 위안을 받았습니다.

   山村과 중간 산촌 그리고 어촌 등 유배인들의 작고 협소한 가옥까지도 考證을 바탕으로 재현하여 놓은 마을에 야채 밭과 축사 심지어는 “통시“라 불리 우는 화장실도 볼 수 있었으며 대나무가 촘촘한 “迷路” 모퉁이마다에 새겨진 “몰근 물에 괴기 안 논다.(맑은 물에 고기 안 논다)”라든가 “놈의 숭 털면 이녁 숭 된다.(남의 흉보면 자기 흉 된다.)”는 등 제주 속담도 제주의 인정과 풍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행기간 내내 아쉬웠던 점은 유채꽃의 대명사인 제주도의 길가에 유채꽃 대신 “팬지” “데이지” 같은 서양 꽃이 심겨진 것이라든지,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사철나무와 동백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에 이식되어진 “워싱턴 야자수” 또는 “소철 나무”가 누렇게 말라가는 모습이 흡사 다른 나라로 이민하였으나 현지에 적응 못한 재외 동포들의 고단한 삶으로 보여 져 외국에서 살다가 잠깐 한국을 방문한 저의 마음이 서글프기도 하였습니다.  
 
   제주도의 풍토가 워싱턴 야자수 같은 아열대 식물이 서식하기에 합당하다는 판단으로 심어진 것이겠으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도는 그냥 제주도다워야 하지 않을까?
사물은, 한 알의 밥풀이라고 제 자리에 있어야   보기에 좋은 법, 모든 문제는 없어야 할 곳에 있어서 발생하는가 봅니다. 제가 만일 제주도의 문화 담당관이라면 말라 죽어가는 야자수들을 빨리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주제 넘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돌하르방 하나 제게 말을 걸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잘 갑 서양! (안녕히 가십시오!) (2013 / 04 / 02)
   
글 : 민유선  978-302-5771 / 603-585-7082 / e-mail sunnyksch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