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5일은 특별한 날 입니다.  90년전 방정환 선생께서 시작하신 어린이 날이기도 하고, 절기상으로는 여름의 시작인 立夏, 그리고 個人的으로는 저의 남편 생일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축하하듯 낮 기온이 20도가 넘는 화창한 날씨. 저는 홀로 崇禮門을 찾았습니다.

민유선그림.JPG

   우리가 “남대문”이라고도 하는 “숭례문”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의 남쪽 대문입니다. 태조 5-7년에 창건되었으며 세종과 성종 임기 중 개축과 보수를 해가며 600여년을 지내온 우리 역사의 긍지가 담긴 문화재 입니다.  숭례문은 조선 시대 내내 祈雨祭와 祈晴祭를 지내는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백성에게 나라의 시책을 발표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국내외 사신들을 환송하거나 접견하기도하고 반역자나 중죄인을 처형하는 곳으로도 쓰이는 등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왕자가 지나는데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훼손 되기도 하고, 해방 후에는 서울의 도시 현대화에 따라 통행 제제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들어 대문이 열리고 일반인들의 통행이 가능해진 후, 2008년 한 화재범에 의한 방화로 2층 전각이 소실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전 국민이 슬픔과 큰 상실감에 싸였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원 계획을 세우고 만 5년 3개월만인 2013년 5월 4일 복원 사업이 완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복원 식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복원 사업에 참여한 장인들, 자원 봉사자들, 기부자들, 기념행사 관계자들 외에 다문화 가족, 탈북인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성장해 온 청소년 등 일반 국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축하 공연도 열렸습니다.
   
 “상생”이라는 주제로 80여명의 국립 국악 관현악단과 함께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시작된 문화 공연은 과거의 악운을 씻는 비나리 공연진과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리랑을 합창하며 강강수월래로 마무리하는 뜻 깊은 한 마당 국민 축제가 되었습니다. 방화로 인한 국민의 상실감을 치유하고 숭례문 복원을 경축하는 새 정부 최초의 국민 화합의 장이 되었지요. 

   숭례문 복원은 한국에 단 한 명뿐인 손 기와 기능 보유자 한형준 (84세)옹과 그의 제자 김창대 교수, 국보급 여러 목수들,, 그리고 귀한 목재를 포함하여 물질로 후원해 준 많은 기부자들 (6억원)과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이 합하여 이루어낸 문화재청의 쾌거 입니다. 
 
   이는 5년 전, 한 정신 장애자(?)의 숭례문 放火로 생긴 불행한 사태를 온 국민이 합심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문화재 사랑의 저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남색 치마와 노랑색 저고리를 입고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축사에서 “숭례문은 우리의 민족 혼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얼굴 입니다. 숭례문 복원은 단순한 문화재의 차원을 넘어 우리 문화의 긍지를 되살리고 새로운 희망, 새 시대의 문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며 국정 기조의 핵심 축인 문화 융성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울러 “숭례문의 새 문이 활짝 열렸듯이 우리의 문화 자산을 인류가 함께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벌써부터 예정되어 있는 한미 정상 회담을 위하여 미국으로 출발한다는 인사도 겸하였습니다. 

   서울(힌양)은 五行思想에 따라 중앙은 信을 상징하고, 東쪽은 仁을, 西쪽은 義를, 북쪽은 智를 상징하는 등 다섯 가지 德을 포용하고 있는데, 남쪽에는 禮의 상징으로 崇禮門이 창건되어 “남대문”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의 5월 5일, 필자가 방문한 숭례문 주변은 서울 시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듯한 수많은 인파로 붐볐습니다.(사진 참조) 어린이 날 이어선지 어린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들, 젊은 연인들.  중고등학교 학생들,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까지 숭례문을 보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원형과 다름 없이 복원 되었다는 현판을 감동적으로 살피고 설명서를 주의 깊게 읽거나 사진 찍기에 바쁜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역사 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물에 대한 가치 기준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요즈음 세태에서 우리는 혹 옛 것의 소중함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얼이 담긴 숭례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인가?

 “5년 3개월이라는 숭례문 복원 기간은 우리에게 참회의 시간이었습니다.”라는 변영섭 문화재청 청장의 인사말, 그리고   “오랜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 흩어진 옷 깃을 여미고 / 무릎 꿇어 역사 앞에 큰 절을 하자. / 그 동안 의롭다고 무례한 적은 없었는가? / 무엇을 안다 건방지고 / 남에게 베풀었다 버릇없이 굴지는 않았는가? / 거듭 태어난 숭례문처럼 / “禮”로써 몸을 씻고 / 다시 태어나자 젊은 이들이여!” 

   숭례문 복원에 즈음하여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이어령 션생님의 글을 음미하며, 숭례문 복원으로 국민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역사의 거리로 태어난 南大門路를 걸어 본 하루였습니다.(2013/5/6)
   
글 : 민유선  978-302-5771 / 603-585-7082 / e-mail sunnykschong@gmail.com